나는 계속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세르게이에게 보복 가능성을 듣고 난 뒤부터 솔직히 나는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면 종종 천 길 낭떠러지를 헤매듯 침대를 기어 다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이곤 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 뒤에야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채린을 찾아 나선 것이 도리어 그들을 자극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에 괴로워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채린을 찾아나서는 일을 도중에 그만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것은 나약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기보다 채린을 사경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커피 잔을 기울였다. 순간 커피 잔이 손가락 사이를 벗어나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어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엉겁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 레스토랑 종업원이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는 작은 메모지와 빗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카운터에 전화 왔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커피 잔이 떨어진 것과 전화가 걸려온 것이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막연한 직감이었다. 수십 년간 살인 사건만을 쫒아 다닌 강력반의 늙은 형사가 사건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육감정도는 아닐지라도 막연하게 감지되는 그런 육감이었다. 기분이 언짢았다.

어디서 걸려온 전화일까. 알렉세이. 빅또르 김. 나 선배. 세르게이……. 채린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달려갔다. 마음을 졸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장 기자. 나야. 김이야. 급히 총영사관으로 들어와야겠어.”

무슨 일입니까?”

영사관에 들어오면 알게 돼. 지금 바로 들어오는게 좋겠어.”

“........”

나는 알리에크를 앞세우고 영사관으로 차를 몰게 했다.

총영사관의 나 선배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자 급히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의 눈빛이 심상찮게 보였다. 싸늘한 냉기와 걱정스러움이 그의 눈동자 속에 뒤섞였다. 그것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난 수험생의 눈빛 같은 것이었다. 그는 나를 소파에 끌어 앉힌 뒤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한동안 고정된 뒤 탁자위의 재떨이를 응시했다. 사실 나는 그의 행동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입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주시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장 기자 미안하네.”

그는 뜨거운 커피 잔 언저리를 만지작거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런 행동으로 내게 무슨 어려운 난제를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뜻도 동시에 내게 전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숨 막히는 궁금증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른 뒤 어렵게 얘기를 털어 놓았다.

오늘 나홋카에 있는 북한 대사관으로부터 정식 공문이 접수됐는데 공문 내용이 개운치 않아.”

왜요?”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벌목공이나 탈북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혹은 그들의 은신을 도와주는 행위. 또 벌목공들을 은닉하는 행위를 하는 우리 동포들에게는 필히 보복을 한다는 내용이었어.”

보복?”

납치 살해 등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행동에 보복을 하겠다며 위협해오고 있어.”

탈출한 북한 벌목공?”

연해주에는 현재 벌목장을 탈출한 벌목공만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국내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치야. 북한 정권의 붕괴조짐이 보인다고나 할까. 그들이 대부분 이곳 고려인이나 한인사회에 숨어있는 형편이거든. 특히 이곳에 들어와 있는 우리 측 선교사들이 그들을 숨겨주는 경우가 많아 신변보호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은 상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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