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자료사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자료사진.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데 그 학생의 성적이 어느날 갑자기 크게 올랐다면 아버지가 문제를 유출했다는 증거가 없더라도 정황논리로는 일단 아버지의 범죄를 의심하게 돼 있다. 정말 우연히도 그 시험에 자녀가 아는 문제들이 많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수천 억 만 분의 1의 확률이다. ‘아버지의 부정’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기 어렵다.

김소연 대전시의원(민주당)이 폭로한 금품요구 사건에서 박범계 의원은 ‘그 학생의 아버지’와 유사한 처지에 빠져 있다. 사건이 명명백백하게 소명되지 않는 한, 박 의원은 그 아버지의 처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박 의원은 “난 1g(그람)도 연관돼 있지 않다”고 했다. 아래 사람들이 다 한 것으로, 자신은 모른다는 말이다.

하필 적폐청산위원장 지역구에서 터진 ‘적폐 사건’

이 사건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김 의원 후보 때 불법자금 1억 원을 요구받고, 일부 후보자가 실제 그런 돈을 건네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해 박 의원이 정말 몰랐느냐가 사안의 핵심이다. 박 의원은 미래의 정치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기대주로,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까지 맡았었다는 점에서 의외의 사건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박 의원 선거구에선 나올 수 없는 사건이 하필 그곳에서 터졌다.

박 의원 지역구에서 벌어진 일이고 연루자들이 모두 박 의원 비서를 지내는 등 측근들이라는 점에서 그는 곤혹스럽다.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부하 공무원의 비리를 모를 수는 있으나 국회의원이 자기 측근의 커다란 비리를 몰랐다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촌지 정도의 금품이면 몰라도 측근이 수천만 원이나 억 단위의 금액을 ‘상전’ 몰래 거래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상식이 다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박 의원과 민주당은 이런 상식이 잘못됐음을 설명해주어야 국민들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박 의원은 진실게임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차라리 ‘의심받는 아버지’로 남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민은 물론이고 박 의원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유권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박 의원은 성실하고 충분하게 해명함으로써 오해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 박 의원은 “영장 담당 판사가 단 1g의 관용을 베풀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도 “내가 시켰다”고 말하지 않았다. 박 대령의 진술만 믿으면, 다 측근과 아래 사람들이 알아서 한 일들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정말 몰랐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없다.

‘나는 1g도 관계가 없고, 상대에겐 1g도 관용의 여지가 없는 것’이 정녕 박 의원의 정치인가? 사람은 다 그렇다. 내게 불리한 것은 1g만 더해져도 싫고, 상대에겐 1g만 빠져도 아쉬운 법이다. 내 눈의 대들보는 안 보면서 남의 티눈은 보고자 한다. 국민들은 남과 내 눈의 대들보를 다 볼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한다. 적어도 남 눈의 대들보를 볼 때 내 눈의 티눈도 함께 볼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한다. 이번 사건은 박 의원이 그런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믿어온 사람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박 의원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자신의 측근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금품요구 선거는 무엇보다 없애야 할 심각한 정치 적폐다. 그가 적폐청산위원장까지 맡아 외친 적폐청산 구호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측근들까지 그의 말을 이렇게 귓등으로 듣고 무시했겠는가?

실수보다 부인과 변명이 파국의 진짜 원인

이번 일로 그의 적폐청산은 헛구호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는 자기 측근조차 그의 말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박 의원 해명대로, 이번 사건이 순전히 아래 사람들의 소행이라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자기 측근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어떻게 믿겠는가?

민주당은 이런 사람에게 중앙당 당무감사원장이란 감투를 또 하나 씌워주었다. 박 의원의 ‘1g 해명’을 당에서 인증해준다는 뜻이라면 오기요 오만이다. 국민들이 박 의원과 당의 책임을 1g이 아니라 1t(톤)으로 여긴다면 당의 인증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박 의원도 당도 손해만 커질 수 있다. 당은 관직이 아니라 ‘충분하고 성실한 해명’으로 박 의원을 살려야 한다. 

대전을 대표하는 차세대 정치인 박범계 의원의 위기다. 위기는 때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은 실수하기 때문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회복 불능의 파국은 실수 자체보다는 이를 부인하고 변명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신뢰가 생명인 정치인은 특히 그렇다. 국민들은 잘못을 했느냐보다 자기 잘못을 시인할 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시험 문제를 유출한 바가 전혀 없는 ‘억울한 아버지’의 처지라면 본인과 당에서 충분하게 해명해주어야 하고, 만약 ‘아버지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본인이 먼저 책임져야 맞다. 그래야 더 큰 박범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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