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깨진 커피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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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호텔에서 눈을 뜬 것은 낮 12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나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병이 텅텅거리는 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굴러 다녔다. 뒷골이 당겨왔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몸이 무거웠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들이켰다. 하지만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알리에크는 그 때까지 맞은편 침대에서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었다. 따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대 난간에 걸터앉아 까칠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어디로 데려갔을까. 미스터 쟝은 왜 채린을 데려갔을까. 알리에크의 말처럼 단순한 인신매매를 위해 데려간 걸까. 채린의 메모로 보아 그것도 아니다. 드뇸이 무슨 의미일까. 12시 이후. ‘오후에라는 말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뜻이 담겨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아내를 데려갔다면 그곳은 어딜까. 채린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달아난 걸까. 채린을 납치한 뒤 지금까지 아파트에 감금시킨 것은 왤까. 총영사관과 이곳 경찰이 그녀를 계속 수배했기 때문일까. 채린을 데리고 간 곳이. 하바롭스크,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코바, 타시켄트…….아닐지도 몰라. 채린을 거추장스럽게 느낀 나머지 이름 모를 거리의 모퉁이에 버렸는지도 몰라. 그곳에서 그녀가 죽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손가락을 머리카락 속으로 깊이 찔러 넣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쟝이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로스케 아가씨와 함께 생활했다면 그들 둘이서 채린을 감시했을지도 몰라. 밤에는 일회용 주사기로 마약을 투여하고 눈알 풀린 모습으로 변태적 성희를 즐겼을 거야. 그러면서도 채린에 대해서는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을 거야. 미스터 쟝이 나가면 그 계집이 채린을 감시했을 것이고, 그들은 화초에 달라붙은 진딧물같이 채린의 행동 하나하나를 응시했을 거야. 앉고, 눕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숨 쉬는 것까지 …….혹 채린에게 마약을 투여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채린을 찾지 못한다면 가뭄에 목 타는 잡초같이 말라 들어갈 것 같았다. 우선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갈 것이고 머리는 박제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가 단순히 거추장스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린을 살해한다면…….’

나는 생각이 여기에서 멎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군가가 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핏줄이 불거져 올랐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낯선 나라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나를 두고. 그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을 거야.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도 안 돼.’

방정맞은 생각을 힐책했다.

나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호텔 4층 로비로 내려가 전화기를 들었다.

총영사관 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고 했어. 우수리스크에서 오늘 들어온 소식인데 나홋카에 김 선생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확인하라고 지시했어. 하지만 현재로는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어. 아무튼 계속 찾고 있으니까.”

그의 이야기는 내가 탐문을 끝낸 뒷얘기였다.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경찰 쪽에서는…….”

글쎄, 그쪽도 별다른 소식이 없더군. 계속해서 수사에 나서고 있다는 말 밖에 다른 것이 없었어. 답답한 노릇이야. 오늘도 연해주 경찰에 전화를 걸어 수사를 촉구했으니까 기다려 보자고.”

고맙습니다.”

미안하네.”

다른 소식 있으면 전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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