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정책목표 사라지고 자치단체 과열경쟁만 부추길 것 
대전 트램, 세종 KTX역 등 논란사업 ‘테이블 위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자료사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습. 자료사진.

자치단체들이 꿈에 부풀었다.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관문에 부딪혔던 지역 숙원사업을 풀어갈 돌파구가 열렸다고 바라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예타 면제’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4일 정부합동발표에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공공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국가균형발전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을 연내 선정하고, 선정된 신규 사업은 예타 면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후속 조치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는 시·도별 자체사업 2건과 광역사업 1건을 후보사업으로 선정해 제출하라고 자치단체에 요청했다. 그러나 예타 면제 사업의 선정기준과 범위 등이 모호해 실현여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 사이 자치단체들은 숙원사업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정책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예타 면제사업 ‘신청’을 예타 면제사업 ‘확정’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지역언론이 해당 지역의 대형 SOC사업들이 당장이라도 추진될 것처럼 호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달리 충청권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대전시는 시장 공약사업인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사업과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외곽 순환도로망 건설 등 3개 사업을 신청했다. 세종시는 KTX 세종역, 세종∼청주간 고속도로 건설을, 충남도는 충청산업문화철도와 수도권 전철 독립기념관 연장 등을 리스트에 올렸다.

당장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예타 면제’ 여부를 떠나 ‘왜 그 사업을 면제대상 사업에 포함시켰느냐’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타당성재조사 결과발표가 임박한 트램사업을 대전시가 면제대상 사업에 포함시킨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고, 인근 자치단체와 첨예한 입장차이가 있는 ‘KTX 세종역 사업’이 포함된 점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많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목표를 위해 ‘예타 면제’ 카드를 내밀었지만, 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정책목표 보다는 ‘예타 면제’ 그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더니 하늘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현상의 원인이 자치단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중앙정부 스스로 예타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타 제도가 경제논리만 중심에 두기에 지방 공공정책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때문에 ‘예타 면제’가 경제논리를 보완하는 공공성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함에도 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당면과제에 매몰된 나머지 SOC 빗장을 해제시키는 쪽으로 잘못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의 SOC 경쟁만 부추긴 꼴이 됐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자치단체들이 예타 면제를 신청한 대다수 사업이 정상적 절차로는 예타 통과가 불투명한 철도·도로건설 사업이라는 점만 봐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 있다. 

자치단체는 지역 정치권과 합세해 공모사업의 경쟁구도를 ‘정치력 싸움’으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 만약 결론이 지역의 정치력으로 판가름 날 경우 ‘예타 면제’ 관문을 통과한 자치단체야 쾌재를 부르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소외론을 들먹이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만 앞세울 우려가 높다.  

결과적으로 ‘균형발전과 일자리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목표는 희미해지고 ‘예타 면제’를 둘러싼 자치단체간 과열경쟁이 부각되면서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만 높아졌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