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대전시 트램 디자인 공모 대상작. 자료사진.
대전시 트램 디자인 공모 대상작. 자료사진.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카테리니 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아그네스 발차와 조수미가 즐겨 불러 우리 귀에 익숙한 미키스 테아도라키스의 명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첫 소절이다.

나치독일과 싸우는 레지스탕스에 지원했으나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스 청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을 그려낸 이 곡은, 점점 세차지는 바람과 함께 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11월의 대표적인 음률이다.

웬 가을타령인가 하겠다. 잠깐 카테리니행이 아닌 대전행 SRT를 타노라니 문득, 이르면 10월말이면 윤곽이 결정될 거라 했던 노면전차 '트램'이라는 열차가 생각났다. 벌써 11월의 가운데로 향하는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인 트램 말이다. 

대전 최대 숙원인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에 대한 타당성 재조사(이하 타재)가 지난 4월 착수된 이래, 통상 6개월인 그 심사기간을 마쳤는지, 최근인 11월 1일엔 기재부·국토교통부, 타당성 재조사를 맡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트램의 향배에 대해 무슨 얘기가 오간 눈치인데 아직 뚜렷한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왠지 좀 꺼림칙하다.

최근엔 타재통과를 위해 사업비용을 축소해서 용역을 신청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정부가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큰 사업에 신청을 받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면제 사업'으로 전환가능성을 꺼낸 언론보도도 있고, 혼란스런 상황의 연속이다.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두 번째 소절이 생각날 정도로 오랜 논란의 트램에 대한 타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10여년 째 논란이 되어 오락가락한 도시철도 2호선이다. 민선 5기인 2012년 염홍철 전 시장이 고가방식의 자기부상 열차(이하 고가방식)로 예타를 통과했지만, 민선 6기인 2014년 권선택 전 시장이 트램으로 건설방식을 바꾸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트램으로 바꾸면서 트램은 '정치'가 되었다. 애초부터 트램 자체엔 속도의 문제, 도로를 열차길에 양보해야 함에 따른 교통 불편의 문제가 있어, 고가방식에 비해 현저하게 저렴한 비용 대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이 제기되었었다.

그래서 비판이 많았지만, 권 시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끝내는 트램을 고수하고 정부에 타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트램의 '정치'는 6월 지방선거에선 시들했다. 워낙 기울어진 정치적 판이 대전시의 최대현안이자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생활의 문제인 '트램'의 관심을 잡아먹은 것이다. 

누구나 원했던 지하철방식이나 당초 예타 통과된 고가방식은 돈 때문에 거론조차 안 되고, 그나마 박성효 후보가 ‘(저심도)지하+고가+트램’방식의 'DTX'라는 이슈로 반짝 여론화를 시켰을 뿐이다. 

허태정 현 시장은 10대 공약에 트램을 포함시키지도 않은 상태에 전임 시장이 끌어온 트램에 승차하는 전략을 취했다.

허 시장은 시장이 된 이후에도 트램에 대해선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다. 그리고 '타재의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그대로 추진하고, 만약 정부에서 도저히 사업성이 없다고 하면 대중교통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모든 것을 정부부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램이라는 열차, 대전 도시철도 2호선 열차의 기관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더불어민주당 출신 전·현직 시장 덕분으로 대전시민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되어버렸다. 

기재부 타당성조사의 가장 중요한 판단근거는 '경제성'이다. 도시주민의 편의나 교통정책상의 필요성, 즉 주민의 뜻은 사실상 다음이다. 어쩌면 새로운 기관사의 눈엔 사치품일 수도 있다.

아무리 전임시장의 핵심과업이라 해도 허 시장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민의 뜻을 살피고 이에 바탕하여 주도적·적극적으로 판단해서 최선의 정책방향을 결정해 나가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중앙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시켜나갔어야 하는데 그런 허 시장의 모습을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에선 발견하기 어려웠다. 

타재 최종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결정이 되었다면 가급적 11월이라도 빨리 시민에게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타당성을 인정받든, 부인되든 결국 타재결과는 크게 봐선 둘 중의 하나다. 

인정받는다면, 트램이라는 열차는 대전의 역사(歷史)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만약 지역 내에서 논란이 있더라도 이는 트램이 가져올 대전교통정책의 결과에 대한 논란과 책임뿐이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그런데 만약 타당성을 부인받는다면 그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트램과 도시철도2호선의 대전 역사(歷史)는 그 종착역이 돼버리고 만다. 고가방식에서 바꾼 것부터 시작해서, 추진 과정상의 문제도 재점화되고 사업효과, 특히 도시철도2호선 사업자체가 그냥 날아가게 됨에 따른 대전경제에의 파급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대전경제에 1~2조원 이상 손해가 나는 비극적 결말인 파국의 열차드라마가 된다. 

나는 출마의 길을 걸었을 때 트램에 대해서 반대했다. 사실 교통과 경제성 등의 문제 때문에 반대원인의 방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앙정부에서 일을 하며 국책사업의 예타가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예타를 통과한 고가방식을 트램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더욱 컸다. 

그래도 전임시장은 이를 추진했고 현 시장은 이에 동조했다. 내가 잘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결정했으면 제대로 추진하고 제대로 결과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타재를 성사시키는데 행정의 힘을 쏟아야 한다고 봤다.

비극의 드라마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허 시장이 말한 '대중교통 체계의 전면적 재검토' 정도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관료 사회의 전문적 책임성과 정치적 책임성을 따지고 그 책임까지도 물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대전 시민으로서 바랄 뿐이다.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마지막 소절이다. 도시철도는 무엇보다 시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다. 출퇴근길과 아이들 등하굣길에 영향을 주고, 살림살이에 영향을 주고, 집값 등 재산 가치에도 영향을 주는 문제다. 

10여년의 기대와 논란을 헛바퀴 돌게 하면 안된다. 도시철도 2호선이 아련한 기억에만 묻힌 대전시민의 가슴속 아픔으로 남게 해선 절대 안된다.

지금은 트램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마저 통과 안되면 행정의 아집과 무능이 고스란히 대전 시민에게 피해와 절망과 분노를 가져오게 한다. 그래도 '지역경제'라는 이름으로 2호선 열차의 '기적소리'는 울려야 한다. 

철저하고 절실하게 기재부를 설득해라! 최선을 다해라!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