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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89]
탈북자 [89]
  • 이광희
  • 승인 2018.11.05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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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총을 들이댄 쿠션을 입에 다시 물렸다. 눈물이 지르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제야 그는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쿠션을 입에 문 상태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채린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더 큰 고통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손가락을 움켜쥔 채 더욱 심하게 떨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라고 말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재빨리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옆에 놓인 재떨이가 자잘하게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렸다. 탁자보가 어느새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선혈이 만든 추상화가 더욱 넓게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초조함에 쫓겼다.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10여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욱 거세게 다그쳤다.

어디 있어,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어.”

그는 그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스터 쟝이 일주일 전에 데려갔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는 이빨을 덜덜거리며 떨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잔인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면 방아쇠를 당기겠다. 10초를 주겠다.”

나는 그의 눈앞에다 내 시계를 들이댔다.

순식간에 3초가 지나갔다. 나는 정말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도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감지했다. 그는 줄곧 미스터 쟝이란 자가 여자를 데려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5초가 지났다.

미스터 쟝은 혼자 다니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8초가 지났다.

그는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미스터 쟝은 아파트에 살지만 …….”

9초가 막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자보다 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저질러 본적이 없는 살인이란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손에 주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말을 끝내 듣지 않는다면 머리에 구멍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를 도리어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나를 괴롭혔다.

방아쇠는 이미 반쯤은 당겨졌다.

9초가 지났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결심했다. 그때였다.

말하겠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쏘지 마세요.”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찔했다. 권총의 방아쇠를 풀자 그는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떨고 있었다.

미스터 쟝. 나홋카 제 4아파트 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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