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조용히 물었다.

어디 있나.”

“........”

그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되물었다.

이 사람 어디 있나. 살고 싶으면 입을 열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긴장을 늦췄다. 내 마음이 갈수록 조급해지는 것과는 달리 그는 도리어 느긋해지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던 몸도 이제는 안정을 되찾았고 바이올린 줄같이 팽팽하게 긴장됐던 얼굴에는 여유가 감돌았다.

나는 낮게 달린 전등으로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눈빛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는 채린의 사진을 관찰하며 태연한척 했지만 머뭇거렸다.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무언중에 내보였다. 또 눈알을 반짝거리며 밖으로 튈 틈을 찾고 있었다. 꾀를 파는 아이처럼 순간적으로 탁자를 밀친 뒤 내가 균형을 잃은 틈을 이용하영 달아나겠다는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의 위치를 바꾸는 소리가 예민하게 들렸다.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튼 수작을 하면 머리에 총구멍이 날 줄 알아.”

권총을 재빨리 그의 관자놀이에 가져갔다. 그제야 자신의 계획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채린이 어디에 있느냐고 다시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밀약이라도 한 것처럼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 내게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채린의 사진을 보면서 놀라는 모습으로 미루어 채린의 행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확신을 했다. 그럼에도 내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는 나의 심연에 깔려있는 그 악스러움을 불러냈다. 무당이 주술을 외며 혼신을 부르듯 그는 나의 잔인성과 비인간적인 간교함을 스스로 불러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런 그악스러움이 다시 발동되는 것을 달갑잖게 생각하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도 가책이려니와 미친 사람의 행동을 내게서 발견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성을 잃고 날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나의 잠재된 악마 성을 부르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가 말문을 열지 않는다고 그대로 봐줄 수는 없었다.

손을 테이블에 올려.”

나는 강한 어조로 말을 던졌다.

“........”

나는 권총의 자물쇠를 풀었다. 찰칵하는 짤막한 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매웠다. 그는 내 눈 속에 독기가 엉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제야 슬그머니 손바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애써 태연한척했다.

어디에 있는지 말하면 조용히 나갈 거야.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어.”

나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자 사내는 마음이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는지 자신에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살아서 나홋카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빈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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