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생활임금 삭감과 고용률 70% 목표

대전시가 29일 개최한 '일자리정책 추진방향 보고회'. 시는 고용률 70% 일자리 30만개 창출 목표를 제시했다.
대전시가 29일 개최한 '일자리정책 추진방향 보고회'. 시는 고용률 70% 일자리 30만개 창출 목표를 제시했다.

허태정 대전시장의 일자리정책과 노동정책이 겉돌고 있다. 고용률을 70%까지 늘리겠다며 파격적(?)인 일자리목표를 제시하면서도 공공부문 저임금 근로자의 처우기준이 되는 생활임금 결정엔 인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역 노동계와 진보성향 시민단체 등은 최근 허 시장의 생활임금 시급결정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전시 생활임금위원회가 지난 5일 내년도 생활임금 시급을 9769원으로 결정했지만, 대전시는 지난 26일 169원을 삭감한 960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생활임금 시급은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기간제 직원, 민간위탁 기관 직원 등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민간부문 임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 기준은 법률적 가이드라인인 ‘최저임금’과 같은 강제력은 없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수준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제도다. 

그러나 대전시는 “최종결정은 시장이 하게 돼 있다”며 위원회 결정을 존중하지 않았다. “자치구와 임금편차, 급격한 인상에 대한 우려, 시 재정상황” 등을 감액 사유로 제시했다. 

대전시 해명이 궁색한 변명이라는 점은 이내 확인됐다. 서울시는 올해 생활임금 9211원을 10.1% 인상한 1만 148원, 경제규모가 비슷한 광주시도 올해 생활임금 8840원을 14.1%나 인상한 1만 90원으로 결정했다. 대전시 인상률 6%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대전시 생활임금 시급 적용대상자는 1120명 규모다. 시 재정상황을 고려했다는 대전시가 생활임금 인상률 제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정적 이득이 3억 4000만 원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문제는 대전시 결정이 지역 경제계와 노동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생활임금 기준에 대한 논란을 유발시키면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조치다.  

무엇보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제시하고 있는 일자리 정책의 순수성마저도 의심받을 처지에 놓였다. 허 시장은 29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선7기 일자리정책 추진방향 설명회’에서 고용률 70% 달성, 30만 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참석한 전문가들에게 “제 첫 공약이 경제문제이자 일자리였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지의 출발선이라는 생각으로 집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시의 생활임금 시급 삭감 결정은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허 시장의 시정철학과 배치되는 결정이란 점에서 대전시 일자리 정책과 노동정책의 엇박자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정의당,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등이 비난 성명을 낸 데 이어 지역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30일 대전시청 앞에서 대전시의 생활임금 삭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한 목소리로 대전시가 기존 결정을 철회하고 생활임금위원회가 결정한 시급 9769원을 수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허태정 시장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행정이 한 번 내린 결정을 쉽게 뒤집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정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대전시가 ‘생활임금 시급 삭감 결정’으로 얻게 될 재정적 이득보다, 갈등유발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만 키우게 됐다는 점에서 신중치 못한 결정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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