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인생 그리고 처세 375]

오늘 날은 기계하나로 같은 물건을 수십 개에서 몇 억 개씩 만들어 내는 대량생산시대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 사람들은 자기가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한 소중함이나 애착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물건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들어 쓰던 수공업시대의 옛사람들은 자기가 쓰는 기물에 대한 소중함이나 애착이 지극하였다.

기물하나를 마치 자기의 분신이요 평생의 동반자로 여겼다.

그래서 세숫대야나 벼루, 칼, 베개, 담배통 같은 일용 잡기에다 글이나 그림을 새겨 넣고 자신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

그것이 기물명이다.

옛 선비들은 기물 명을 새겨 넣고 그 기물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였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은 사물을 단순 사물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인격화 하여 그 사물에다 영혼을 불어 넣어서 인문학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할 수 있다.

옛 선조들의 기물 명을 통해 옛 사람들의 정서를 공감해 보기로 한다.

탕왕은 목욕그릇에다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자신을 채찍질 했다.

중국 은나라의 시조인 탕왕은 자기의 목욕그릇에다 날로 새로워지려 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하라.(苟日新日日新 又日新)는 글귀를 새겨 넣고 언제나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한다.

이규보는 벼루와 의자에다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인생의 동반자로 삼았다.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이규보는 자기가 쓰는 벼루에다‘벼루야 벼루야 네가 작은 것은 네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야 너는 한치 웅덩이에 불과해도 끝없는 내 상상력을 돕고 나는 여섯 자의 키에도 네 힘을 빌려 내 뜻을 펼치는 구나, 나는 너와 함께 가리니, 삶도 너와 함께 죽음도 너와 함께’라는 기물 명을 새겨 넣고 벼루를 평생의 고마운 벗으로 여기며 벼루와 함께 일생을 마치겠다 하였다.

이규보는 의자의 부러진 다리를 고치고서‘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부러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 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하랴’라는 기물 명을 의자에다 새겨 넣고 의자를 단순 기물이 아니라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로 승화시켰다.

유신환은 아들의 나막신에다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아들을 훈계하였다.

19세기 문신이며 학자였던 유신환은 어린 아들에게 나막신을 주면서 나막신에다.

‘미투리 신으면 편안하고 나막신 신으면 절뚝거리지, 그래도 편안하며 방심하기보다는 절뚝거리며 조심하는 편이 나으리라.’라는 기물 명을 새겨 넣어 아들로 하여금 매사를 삼가며 조심하도록 훈계를 하였던 것이다.

이덕무는 목침에다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인생의 지표로 삼았다.

조선정조시대 실학자며 시인이었던 이덕무는 베고 자는 목침에다‘군자가 베고 잘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선(善)과 인(仁)이 아니겠는가.’라는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선비로서 정도의 삶을 사는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당경(唐庚)은 벼루에다 기물 명을 새겨 넣고 생명보존의 본보기로 삼았다.

중국 북송시대 문신이었던 당경(唐庚)은 자신의 벼루에다

‘능히 예리하지 못한지라 이로 인해서 둔함으로 몸을 삼고 능히 바삐 움직이지 못하는 지라 이로 인해 고요함으로 쓰임을 삼노라.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내 생명을 영구히 하리라’라는 기물 명을 써놓고 벼루를 생명을 보전하는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벼루, 먹, 붓 중에서 제일예리하게 생긴 것이 붓이고 그 다음이 먹, 제일 둔하게 생긴 것은 벼루다.

또 움직임의 순서로 보면, 제일 많이 움직이는 것이 붓이고 그 다음은 먹, 제일 적게 움직이는 것은 벼루다.

그러나 오래가는 순으로 볼 때는 붓이 제일 빨리 달아 없어지고 그 다음은 먹이고 벼루가 가장 오래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사에 예리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은 한마디로 욕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경쟁자와 적이 많이 생겨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자기의 명을 다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에 우둔하고 한가로운 사람은 욕망이 별로 없어 자기를 시기하고 견제하려는 적이나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명을 다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생명을 오래도록 보전하려면 벼루처럼 우둔하고 고요하게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부터 내가 쓰는 기물에다 나의 혼을 불어 넣어보자 그리고 대화를 해보자.

 


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 김충남의 강의 일정

⚫ 대전시민대학 (옛 충남도청)

- (평일반)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인문학교육연구소

- (토요반)

(매주 토요일 14시 ~ 17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 국악방송, 고전은 살아있다, 생방송 강의 (FM 90.5 Mhz)

(매주 금요일 13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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