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 민간특례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대책위 관계자들. 사진 중앙이 필자인 김윤기 정의당 대전시당 위원장. 자료사진.
월평공원 민간특례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대책위 관계자들. 사진 중앙이 필자인 김윤기 정의당 대전시당 위원장. 자료사진.

월평공원 공론화가 시끌시끌하다. 공론화는 공공정책이 초래할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인 만큼 소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소란은 다양한 의견과 대안의 부딪힘이 아니라, 절차에 대한 공정성 시비다. 불필요한 소음이다. 공론화 과정은 시작 두 달여 만에 사실상 중단 사태를 맞았지만, 책임 있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필요한 시점에 적확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서, 신뢰는 무너지고 사태는 악화되어 왔다. 구성 당시부터 원칙이지도 충실하지도 못한 논의 과정이 불신만 키워 온 것이다. 원인은 현상보다 뿌리 깊고, 본질적이다.

충분한 협의도, 최소한의 합의도 없었지만

파행의 시작은 10월2일, 공론화위원회의 ‘일방적인 서면 통보’다. 공론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민참여단 모집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던 도중에, 100% 유선 RDD 방식을 강행하겠다는 통보였다. 세 차례까지 이어졌던 이해관계자협의회에서 진지하게 의견을 모으던 과정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즈음 합의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시민참여단 모집이 시작되었고, 제안조차 되지 않았던 SNS 무작위 배포를 통한 모집까지 이루어졌다. 스스로 공정성과 대표성을 바닥에 내팽개친 것이다. 

지난 19일, 김영호 공론화위원장의 갑작스런 기자회견도 이해하기 힘들다.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는 시민참여단의 추가 모집 규모나 방식에 대해 이해당사자와 단 한마디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파행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문제제기에 상관없이 강행하겠다는 태도이다. 

파행에 대한 사과 또한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불참으로 인해 대전시민과 시민참여단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고 하면서, 공론화위원회의 책임을 ‘일부 이해관계자’에 전가해 버렸다. 공론화위원회의 정상화 방안을 브리핑하는 자리였지만, 실제로는 정상화의 남아 있는 가능성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보기에 그럴싸한 공론화 간판을 걸어 놓고, 2중, 3중의 자물쇠를 채운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자물쇠는 풀어주지 않으며 ‘왜 못 들어 오냐?’고 타박하고 있는 꼴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당연한 말이지만, 월평공원 대규모 아파트 건설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논란이 컸기 때문이다. 첨예한 의견의 대립을 조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될 권고안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권고안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론화위원회의 중립적이고 공정한 과정, 투명한 운영은 필수적이다. 또한, 민간개발특례사업을 주도해 온 대전시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전시 주요 인사들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들이 있는가를 의심케 한다. 지난 22일에는 시장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종남 정책자문관이 언론 기고를 통해 “공론화 과정 또한 실험실이 아닌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오염과 제약이 있을 수 있고, 상황변화에 따라 결정과 행위의 유연성이 요구되기도 한다”며 에둘렀지만, 공론화위원회의 한계를 인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오염과 제약’이 대전시가 해결할 수 있는 ‘예산과 정해진 기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에 앞서 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시장 견제를 하기 위해서 보여주기식 억지를 부리지는 않을 생각”, “공론화위원회의 의견에 따른 허 시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사실상 공론화위원회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파행의 원인과 이로 인한 결과에 대한 인식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안 그래도 민주당 일색인 대전시의회의 역할에 걱정만 안겨 주었다.

허태정 시장의 의지는 무엇인가?

허 시장은 지난 2일 ‘유성구, 누구나 토론회’에 참석하여 “환경을 보존하면서 최소한으로 개발하는 게 현실적인 안이 돼 버렸다”, “충분히 숙의를 하지 못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이 사업이 진행돼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이 두 문장만으로도 허 시장이 의지가 어디에 가 있는지를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공론화위원회에 보내는 의도적인 시그널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중을 전하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공정한 공론화 과정을 약속한 시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이런 시점에서 쓸데없는 말일 수도 있으나, 허 시장이 진심으로 공정한 공론화를 원했다면 했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 민간특례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의 대안, 사유지 매입 또는 임대를 위한 재정 마련 방안 등이 그것이었다. 

대전시는 그동안 민간특례사업을 유일한 대안으로 이야기해 왔고, 사유지 매입 등을 통한 보존 주장을 비현실적 이상으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기울어진 무게 추를 시정하려는 노력 없이 공정한 공론화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말에 불과한 것이다.

공론화, 최악의 사례될 수도

공론화 과정으로 오히려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양상은 복잡해졌다. 대표적으로는 공론화위원회가 갈등의 한 주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필자는 시민참여단 재구성 주장을 지지하지만,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여가를 즐겨할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고민하고 참여하는 분들이다. 이러 시민들에게 본의는 아니지만,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스럽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는 공론화 이후 늘어 난 쓸데없는 갈등의 한 양상이다.

무엇보다 공론화 제도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거론되는 지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공론화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여 더 좋은 민주주의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이다.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첨예한 논란으로 인한 정치인의 부담을 회피하거나, 그 책임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지적되고 있다.

이번 공론화는 월평공원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이제 막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공론화’ 제도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민간특례사업을 강행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공론화 역사에 있어서도 최악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는 과감하게 끊어내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해답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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