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41] 압력 굴하지 않는 용자 출현을 바라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 출처=박 의원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 출처=박 의원 페이스북

사립유치원 비리 명단 공개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유치원생을 둔 부모들 속은 그야말로 부글부글합니다. 여섯 살 난 유치원생을 둔 저 역시 ‘혹시 우리 애 다니는 유치원도 있을까’ 뚫어져라 명단을 살폈을 정도입니다.

사립유치원 비리 명단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서울 강북을)은 초선입니다. 전반기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지요. 그러다 후반기 교육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지 석 달여 만에 크게 ‘한건’ 했습니다. 그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사립유치원 감사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했는데요. 총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습니다.

박 의원은 이미 공개한 것 외에 추가명단도 공개하겠다고 합니다. 내년도 원아 모집을 앞두고 터진 ‘비리폭탄’에 전국 유치원 운영자들은 노심초사, 좌불안석, 전전긍긍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할 정부 지원금을 받아 성인용품이나 명품가방을 사고, 노래방을 가거나 원장 외제차 수리에 썼다는 사실은 '공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감사 결과와 처분 내용을 알고도 쉬쉬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무척 유감입니다. 정부는 일주일 안에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 공개하고, 비리 신고센터를 열기로 했는데요. 여론에 떠밀린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시에 여론은 위협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박 의원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유치원생을 둔 한 학부모가 그러더군요. “박용진 의원이 우리 지역 의원이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재선 당선을 돕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박 의원조차 이번 명단 공개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고백입니다.

박 의원은 지난 15일 한 방송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한 (유치)원에 100명 정도 원아가 있으면 곱하기 2, 엄마, 아빠. 이렇게 해서 한 200명 정도 학부모들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야죠. 그런 유치원이 저희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에 30개 정도가 있거든요? 그러면 거의 5000명, 6000명에 가까운 아이들 엄마, 학부모들에게 아주 1차 관계, 그리고 갑을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서 여러 영향을 미쳐요.”

그럼에도 박 의원은 ‘용기’를 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고 여긴 것이겠지요. 그의 용기에 국민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응원에 힘입어 박 의원은 “소송위협에 굴하지 않고 유치원 비리 해결에 끝을 보겠다”고 합니다.

박 의원은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을 하겠답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정부 보조금으로 규정해 횡령죄를 묻도록 했고요. 사학법 개정안은 비리가 적발되면 이름을 바꿔 다시 영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박 의원은 이참에 어린이집까지 들여다보겠다고 하네요. 잘못한 게 없으면 ‘쫄’일도 없고, 눈물 짤 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충청 정치권에는-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닐 정도는 아니어도-뽑아준 게 아깝지 않을 국회의원 어디 없나요? 20대 국회에서 대전과 충남 지역구 여야 국회의원만 18명입니다. 그런데 ‘박용진스럽다’고 할 만한 의원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이 이상한 걸까요?

이 대목에서 최근 지역 정치판을 흔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소연 대전시의원을 소환합니 다. 그녀는 지난 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정치 브로커의 ‘돈 요구’를 폭로했습니다. 후폭풍은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선관위는 김 의원에게 금품을 강요한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입니다.

저는 김 의원을 만난 적도, 전화통화도 해본 적 없습니다. 기사로만 접했을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김 의원이 ‘용자(勇者)’라고 생각합니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 등장은 정치인들 사이에선 ‘알고도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30대 정치 신인이 “그렇게 큰 금액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무섭기까지 했다”는 두려움과 초선 의원으로서 “정치를 희망하는 청년과 후배들에게 사례를 공유하기 위함”이라는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고민 했을까요.

박용진 의원이나 김소연 의원 모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용기를 냈습니다. 남들은 그냥 참고 덮었을 불의(不義)에 그들은 정면대응을 선택했습니다.

사립유치원 비리는 비단 박용진 의원 지역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대전은 21곳, 충남은 82곳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요.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런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요?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공범과 다름없습니다. 지역 국회의원님들, 고개 돌려 가슴 한쪽에 달린 배지 한 번 보십시오. 부끄럽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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