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40] 부작용 최소화 대안 마련 등 신중한 접근 필요

“대통령께서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 인구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위기 속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방분권 개헌을 하자는 것인데요. 지방분권을 한다고 문제들을 다 해소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역정부’라든가 ‘압축도시’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 지방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지방분권 어떻게 가야될지 여쭙겠습니다.”

“우선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과연 지방이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는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지방 정부들은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고, 오히려 중앙정치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지방정부가 메워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정부가 단순한 행정사무의 어떤 한 부분을 자치하는데서 넘어서서 재정, 조직, 인사 그리고 복지에 대해서도 자치권과 분권을 확대해 나간다면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위해서 보다 밀착하면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테고, 그것은 또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나 다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억제하면서 지방이 피폐해지는, 또 공동화되는 그런 길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있은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저와 대통령이 나눈 질의응답입니다.

‘지방소멸’과 ‘인(In)서울’을 놓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지 9개월이 흘렀습니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은 완전한 지방분권과 자치에 얼마나 접근해 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문 대통령이 대선기간 공약한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십니까? 또 지방분권이야말로 소멸해가는 지방을 위기에서 구할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난 10일부터 시작한 국정감사가 여야의 치열한 공방 속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각 의원실에서 오는 자료만 하루에 수백 건이 넘습니다. 자료들을 접하면서 실감하는 건 대한민국이 여전히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방은 건설, 교통, 교육, 문화, 주택(부동산) 등 전 분야에 걸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종속돼 있다는 현실입니다. 정부 예산 편성과 집행내역만 봐도 그 격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해마다 예산 편성 철이면 전국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이 기획재정부와 국회 예결위원장 및 예결위원실 복도에 줄 서 있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수도권과 지방 불균형'은 심각히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하려던 ‘개헌 국민투표’가 무산되면서 지방분권 개헌도 기약 없이 미뤄졌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굳이 개헌을 하지 않아도 법률 개정으로 지방분권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헌법학자들 시각은 다릅니다. 1987년 만들어진 헌법 체제는 지방분권 국가 추진에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정부 사례를 봤을 때, 지방분권 정책의 강력한 동력을 마련하려면 지방분권 개헌은 ‘필수’라는 겁니다.

입법권과 재정권을 고스란히 지방에 넘겨주면 중앙 정부와 국회의 역할과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점점 움츠러드는 지방을 소멸 위기 속에 방치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방분권이 수도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극복할 해답일까요? 지방분권은 ‘제왕적 시‧도지사 출현’이란 우려를 잠재하고 있습니다.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례를 보겠습니다.

그는 1년 6개월 전만해도 대권 주자였습니다. 충남에선 이미 ‘대통령’이었습니다. 젊은 여성을 수행비서로 삼고 외국 출장까지 데리고 다녀도, 마땅한 명분도 없이 매달 해외에 나가도, 귀국 기자회견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안 전 지사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전국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중 상당수가 안 지사처럼 지역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지방자치단체 현실입니다. 이들을 제대로 비판하는 지방언론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 또한 ‘지방자치 20년’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에 입법권과 재정권마저 주어진다면 단체장은 ‘트리케라톱스’(초식공룡)에서 ‘티라노사우르스’(육식공룡)로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지방자치의 주인이라고 하는 ‘주민’은 또 어떻습니까.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동네 일’에 관여할 겨를이 있을까요. 지역사회라는 한울타리에 살고는 있지만, 정치나 행정에 무관심이 대세인 일상에서 ‘내 일’처럼 지방자치에 발 벗고 나설 환경이 흔쾌히 만들어질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지방분권의 공간적 단위 모델로 ‘압축도시’, ‘권역(광역)정부’가 대안으로 나오는데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학과 교수가 지난 8일 발행된 주간지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행정구역을 통합해 광역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일단 17개 광역지자체를 5~7개 정도로 통합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공간적 단위는 이런 광역 단위여야 한다. 광역지자체가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각각을 압축하고 광역적 시각에서 도시 간 연계전략을 자율적으로 세우게 해야 한다.”

지방분권 전에 지자체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광역지자체 내 도시 간 격차는 거점의 개발이익을 주변지역으로 이전시키는 ‘상생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줄여나가야 한다”는 게 마 교수 주장입니다.

남북 관계가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분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지자체간 교류 추진도 담겼습니다. 남북 지자체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통일이 되더라도 정서와 문화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대북제재 조치 해제로 남북 경제협력이 활발해진다면 ‘통일’에 부정적인 우리 청년들의 인식도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통일부터 한다면 혼란과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처럼, 지방분권 역시 무작정 몰아붙일 일이 아닙니다. 철저한 준비와 그에 따른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제왕적 시‧도지사도 막고, 지방간 격차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인 서울→탈(脫)서울’을 견인할 지방분권은 공론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남북통일과 연방제까지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600년간 이어온 한양 중심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실이 ‘지방소멸위험지수 계산법(20∼39세 여성인구/65세 이상 고령인구)’를 농가인구에 대입해 계산·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2025년 무렵이면 농가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안희정 전 지사는 대선 예비후보 시절 “‘인서울’이 아니면 ‘루저’가 되는 촌스러운 대한민국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 했습니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 소멸 위기에 처했는데, 공무원 수만 늘리는 ‘촌스러움’이야말로 루저가 되는 ‘촌(村)스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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