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시장 “성과 없다” vs “기다려 달라” 판에 박힌 문답
허 시장, 기자회견 없이 간담회로 대체...격식 낮춘 이유는?
성과위주 100일 퍼포먼스보다 ‘시민의 시장’ 비전 내놔야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너무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 
“너무 색깔이 없다.”
“뚜렷한 성과가 없다.”

취임 100일을 맞은 역대 대전시장들에게 쏟아졌던 혹평들이다. 박성효, 염홍철, 권선택 전 시장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묻는 기자들이나 답하는 시장들이나 문답의 패턴은 비슷했다. 

2006년 10월 9일 취임 100일을 맞은 박성효 전 대전시장은 “너무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섣부른 판단”이라며 “최종결단을 내릴 시간이 되는 순간까지 보다 더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 심사숙고할 뿐”이라고 맞받았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지난 2010년 10월 5일 100일 기자회견에서 “너무 색깔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원래 상식적인 것은 색깔이 없다. 색이 없는 것이 내 색깔”이라며 “그런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내 색깔대로 하겠다. 하지만 추진할 일이 있으면 과감하게 한다”고 대응했다.

4년 후인 2014년 10월 7일 취임 100일을 맞은 권선택 전 시장은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그나마 수용적 자세를 보였다. 그는 “100일 동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당연히 비판도 있을 수 있다”면서 “다만, 의미 있는 행보를 해 왔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해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강조했다.

현직인 허태정 대전시장은 오는 8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역대 대전시장과 달리 ‘기자회견’ 형태의 100일 퍼포먼스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당일 오전 예산정책협의회가 잡혀있고 전국체전 출정식 등이 있어 오후에 ‘기자간담회’ 형태로 간략하게 취임 100일 소회를 밝힐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취임 100일 성과를 드러내고 거창하게 홍보하는 방식 보다는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고 앞으로 시정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간담회가 진행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전시가 ‘시장 취임 100일’의 격식을 기자회견에서 기자간담회로 낮춘 것에 대해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언론인들에게 질문권이 부여된다면 “성과가 없다. 색깔이 없다”는 등의 판에 박힌 질문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허 시장 또한 어떤 답을 할지 충분히 예상된다.  

자치단체장이 취임 100일 만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사실 별로 없다. 그래서 역대 시장들과 기자들이 주고받은 문답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우문우답’에 가깝다. 답변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고, 질문자가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는 답변들이다. 

그러나 허태정 시장의 입장이 역대 시장들보다 한층 곤궁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사업추진의 속도만 놓고 볼 때, 한참이나 더디다. 대전시민의 최대 관심현안이거나 시장의 최대 공약사안인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야구장 신설, 둔산센트럴파크 조성사업 계획은 모두 시장의 책상이 아닌 남의 책상에 놓여있다.  

기재부 관료의 책상 위에, 공론화위원의 책상 위에, 용역 실무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시장이 치적으로 내 놓을 만한 다른 성과가 뚜렷한 것도 아니다. 시민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고, 시민사회 참여역량을 강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성과’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대전시 공조직이 시장의 공약실현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거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 경우가 많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시장의 ‘수족’이라 할 만한 특보단은 이제 겨우 그 진용을 갖췄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허 시장과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만한 보좌진은 그 중 한 둘이나 될까. 

설령 하고 싶다 해도 대놓고 ‘취임100일 퍼포먼스’를 하지 못하는 시장의 고민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제 겨우 100일’이다. 역대 시장들이 처했던 입장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무엇보다 자치단체장이 취임 100일 만에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때문에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메시지만 분명하게 던지면 된다.

환경운동가와 인권운동가와 시민주권 감시운동가들을 대전시정의 싱크탱크로 앉혀놓고, 장애인과 노동자를 외면하며 토건 개발정책만 제시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대전만의 담론, 허태정만의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허 시장의 취임 100일은 그런 오해를 쌓아온 시간이었다. 

‘왜 성과를 내지 못했냐’고 틀에 박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생각이다. 서울시민의 박원순, 경기도민의 이재명, 강원도민의 최문순, 경남도민의 김경수가 존재하듯, ‘대전시민의 허태정’이 존재해야 한다. 취임 100일을 맞은 시장이 꺼내놓아야 할 답은 바로 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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