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식은땀에 침대 시트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따냐는 어느새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내 옆자리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녀는 알몸으로 내 가슴과 다리에 자신의 몸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키고 쌔근거렸다. 내 허벅지에 그녀의 곰슬곰슬한 체모가 부끄럽게 감지됐다. 얇은 담요 속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탐스럽게 부푼 엉덩이가 매끄러운 선을 그으며 사라졌다.

분노가 차올랐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타구니가 스멀거렸다.

꿈속에서 보았던 채린의 정사가 ......’

나는 거북스런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따냐가 가져다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슴과 옆구리가 대못에 찔리듯이 결렸다.

나는 이틀 동안 그곳에서 생활한 탓에 채린에 대한 소식이 어느 때보다 궁금했다. 채린이 그들에 의해 더 먼 곳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를 더 이상 이곳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그녀의 방을 빠져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 호텔은 그 때까지 어둠에 묻혀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호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두 명의 근무자들이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들은 잠에 지쳐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엘리베이터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6층에 있는 내방으로 다가갔다. 중국계 마피아들의 보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방 문 앞에 다다른 나는 팔에 힘을 주며 아주 서서히 도어 록을 돌렸다.

룸 안에 그들의 하수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때 방 안에서 엷게 코고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마터면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몸 구석에 돋아난 솜털까지 일어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대로 돌아나갈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돌아나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숨을 죽이며 방안을 조심스럽게 살펴 봤다. 어둠침침한 방에는 낯선 사내가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족히 1백 킬로그램은 더 나갈 것 같았다. 청바지와 몸에 착 달라붙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그 사내는 내가 들어간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호텔 바닥에는 술병과 참치 통조림,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냉장고 속에 넣어둔 술을 제 마음대로 꺼내 마신 모양이었다.

그는 숨을 들이킬 때마다 크게 코를 골았다. 호흡이 끊어진 듯하면 그제야 거친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곤 했다.

그의 머리맡에는 손때 묻은 권총이 손과 한 뼘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나를 향해 놓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맡에 놓여 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권총은 역시 토카레프 38구경 다연발이었다. 알렉세이가 내게 넘겨준 것과 같은 종류였다. 총기 번호가 예리한 물체에 밀려 지워져 있었고 실탄은 모기알과같이 차곡차곡 장전된 상태였다. 다행히 자물쇠는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권총을 들고 조용히 침대 맞은편에 놓인 싱글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권총의 자물쇠를 풀었다.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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