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블라스보스톡 독수리전망대에서 내려 본 금각교 전경.
러시아 극동 블라스보스톡 독수리전망대에서 내려 본 금각교 전경.

대전시내 도로에도 중앙분리대가 눈에 띠게 늘었습니다. 도로 가운데 중앙차선에 말뚝을 세우고 펜스를 치는 간이중앙분리대입니다. 아무리 깔끔하게 설치하더라도 보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시내 곳곳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되면서 도시 전체의 이미지도 훼손되고 있습니다. 분리대는 차량의 불법 유턴과 보행자의 무단 횡단을 막는 게 목적입니다. 사람 목숨을 더 살릴 수 있다면 미관문제만을 이유로 반대하기는 어렵습니다.

2017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4185명이었습니다. 1991년 1만3000명 수준에 비하면 크게 줄었으나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습니다. 자동차 1만대 당 사망자는 한국이 OECD평균의 1.7배입니다. 일본(3914명·2015년)과 독일(3214명·2015년)은 우리보다 인구도 차량도 훨씬 많은 데도 교통사고 사망자는 우리가 많습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면 중앙분리대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되니까 분리대를 설치하는 것이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시미관을 희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앙분리대는 시민들이 교통법규를 지키는 데 따른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서 받는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안전한 건널목과 위험한 루스키대교 

지난 며칠 러시아 극동의 두 도시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을 둘러보면서 러시아 도로의 두 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건널목입니다. 러시아에선 건널목에서 큰 교통사고가 나면 무조건 운전자를 감옥에 넣고 본다는 게 가이드의 말입니다. 설사 보행자가 신호등을 위반했더라도 차량이 일단정지를 준수했다면 사고가 날 이유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건널목 교통사고는 운전자에게 최고 40년 징역을 때릴 정도로 엄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도심 도로의 건널목 중에도 건널목 표시만 있고 신호등은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루스키대교입니다. 2012년 APEC 정상회의는 그해 9월 블라디보스톡의 루스키 섬에서 열렸습니다. 루스키대교는 이 행사에 맞춰 건설된 다리입니다. 영국 감리회사를 통해 안전성을 검사하니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그냥 개통하라고 명령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멀리서 보면 다리 가운데 부분이 약간 위로 솟아올라 있는 위험한 다리입니다.

루스키대교(3.1km)는 우리나라 서해대교(7.3km)보다 규모는 작은 데도 공사비는 더 들었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입니다. 러시아의 부패가 그만큼 심하다는 거죠. 푸틴이 150조 원이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한 건널목’과 ‘위험한 루스키대교’는 러시아 법의 두 얼굴입니다. 엄한 교통법규 때문에 건널목은 안전하게 건널 수 있으나 다리를 건널 때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러시아입니다. 국민들에겐 법 준수를 엄하게 요구하면서 정치인은 법을 무시하는 나라여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한비자』의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합니다. “관리(官吏)가 세상을 어지럽힐 때 홀로 자신의 몸을 결백하게 지키는 민중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민중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홀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관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법이 문란해지는 것은 국민보다 관리(정치인) 때문이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시대가 아닌 곳에 내거는 현수막은 모두 불법입니다. 정치인도 예외일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내거는 인사 현수막은 예외로 인정해줍니다. 선거 기간 중 후보자 정보를 알리기 위한 공공의 목적도 아닌데 말입니다. 구청장이 학원이나 부동산 업체의 현수막엔 과태료를 물리면서 자신의 현수막은 버젓이 내걸면 그 법을 누가 지키려 하겠습니까?

‘불법 비용’ 제대로 계산해봐야

후진국일수록 아래에는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위에서는 법을 우습게 여깁니다. 러시아도 그런 경우일지 모릅니다. 선진국이라면 안전하지 않다고 판정받은 다리가 대통령의 명령 하나로 개통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법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쪽일까요?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법이 엄격하지 않은 나라라고 봅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다는 점은 ‘아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고,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마다 범법자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는 점은 ‘위의 수준’을 말해주는 근거입니다. 위든 아래든 ‘법을 지키는 게 바보’라는 소리를 듣기 쉬운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심지어 법을 어길 줄 알아야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 대상자의 범법의 내용을 보면 동네 이장도 해선 안될 인물들이 태반입니다. 대통령은 그런 위인들을 내편이라는 이유로 높은 자리에 앉힙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풍경입니다. 법은 여야가 서로 상대편만 공격하고 옥죄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불법의 비용’을 제대로 계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분리대는 우리가 작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 들이게 되는 비용입니다.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는 것까지 계산하면 엄청난 대가입니다. 자신 이익에만 밝은 ‘범법 정치인’들이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여기고 세금을 아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제2 제3의 ‘루스키대교’나 만들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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