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 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손창규 대전대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학과 교수.

직장인이자 주부인 46세의 여성 환자분이 가슴이 답답하면서 심한 소화불량과 간혹은 위산이 가슴부위로 올라오는 증상을 가지고 외래로 방문하였다. 평상시에도 수시로 비슷한 증상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다고 하였다. 집 주변에서 2주 정도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아서 위내시경을 다시 받아보았지만, 이전의 경우처럼 약간의 위염소견 이외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의학적 검사에서 소화장애를 설명할만한 특이한 병변이 없으면서 오랫동안 불편한 소화장애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를 “기능성소화불량증”이라 한다. 말 그대로 위장의 기질적 이상(조직의 이상)이 아니라 기능적 이상으로 불편한 증상이 발생한 것이라는 듯이다.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연결되는 소화관의 길이는 약 9미터 정도 되는데, 이러한 소화관에서는 기능성질환이 잘 발생한다. 즉, 간세포가 부서지는 간염의 경우처럼 기질적인 파괴가 있어도 전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 있는 반면, 소화관에서 일어나는 기능성질환들은 기질적 병변이 없이도 매우 괴로운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소화기의 대표적인 기능성 질병을 열거하면 식도, 위장 및 대장 부위 등 위치에 따라서 크게 셋이다. 구체적인 식도의 염증이 없는데도 식도부위가 타는 증상을 느끼는 기능성흉부작열감이나 목에 무엇이 막히거나 걸려있는 듯 답답함을 호소하는 매핵기라고 하는 병이 있다. 다른 하나는 위의 환자의 예와 같이 위장에서 발생하는 기능성소화불량증이고, 나머지 하나는 돌연히 복통과 설사나 변비 등이 나타나는 과민성장증후군이다.

이러한 소화기관에서 나타나는 기능성 질병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기능성소화불량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의 약 10~30%가 기능성소화불량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한 연구그룹에서는 건강검진을 시행한 약 4천명의 성인 중에서 약 17%에서 기능성소화불량증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기능성소화불량증은 임상적으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식사를 하면 바로 배가 포만감을 느끼거나 배가 꺼지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부류와 상복부 쪽으로 통증이나 속쓰림을 호소하는 부류로 구분한다. 유전적인 요인, 헬리코박터와 같은 세균감염, 위산분비의 이상과 정신적 요인 등과 같은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질병이다.

한의학에서는 여러 원인들 중에서 정서적인 요인을 기능성소화불량증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중요시 하였다. 우리말에 감정이 상하였을 경우에 “속상하다“라고 흔히 표현한다. 이 말은 ”속(위장)이 상하였다(기능이 망가졌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다. 즉, 많은 환자가 의식하든 혹은 무의식에서 이든 정서적 불편함이나 화나는 것이 쌓였을 경우에 잘 발생하는 질병이다. 체질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정서적 감정에 매우 예민하거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남을 너무 배려하려는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 더 잘 발생한다. 위의 예를 든 환자도 직장에서 자신만이 아는 속상함이 일정하게 누적되면 심하게 발병한다고 호소하였다. 특히, 이러한 기능성질환에 한의학 치료법들이 우수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특정한 세균이나 단백질을 조절하는 치료법으로 개선되기 어려운 질병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능성소화불량증 환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음식물이 위장을 통과해서 비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고, 위장의 운동이 약한 것이 가장 흔한 이유이다. 따라서 위장의 운동을 촉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원칙 중의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검사법으로 위장의 운동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반적으로 위장질환에서 가장 흔하게 검사하는 내시경 검사는 위의 기질적인 변화를 검사하는 것이지 위장운동을 포함하는 위기능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침치료가 위장운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침치료가 기존의 서양의학적 치료약물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그동안 수행된 침치료 임상연구를 분석한 논문에서 발표되었다. 한약 처방 중에는 “반하사심탕”이라는 약이 대표적인데, 약물 이름이 흥미롭게도 스트레스를 없앤다는 의미로 “사심(瀉心)”이라 한 것이다. 본 약물은 특히 정서적 원인과 상관성이 많은 기능성소화불량증에 효과적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반하사심탕이 음식물의 위배출 시간을 현저히 단축시키고 위와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키는 기전을 동물실험에서 통해서 밝혔다.

많은 일가친척이 만나는 추석연휴가 시작이 되었다. 혹 속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평소 위장기능이 약한 분들은 예방적으로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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