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38] 남북 정상은 통(通)하였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삼지연 초대소를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삼지연 초대소를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번 만나고 가면 노무현 쫓겨 왔다 쓸 텐데 위원장께서 날 그렇게 할 겁니까.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요.”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오후 회담을 추가로 하자며 떼를 쓰면서 했던 말이다. 굉장히 재치 있다고 생각했다. 유시민 《노무현과 김정일의 246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2013, 돌베개) 중.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지 11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 만남입니다.

어쩌면 앞서 두 차례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강도(剛度)는 다소 약해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양’이란 공간이 주는 상징만으로 이번 주 국내 모든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기 충분했습니다.

두 정상은 지난 18일 오후 3시 45분부터 두 시간 동안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다음날(19일)은 오전 10시부터 70분간 추가 회담했습니다. 노무현과 김정일의 246분에 못 미치는 190분 회담이었지만 11년 전 노무현이 얻어온 ‘차비’와는 그 가치가 사뭇 다릅니다.

문재인과 김정은이 만들어낸 ‘평양 브로맨스(bromance, 형제와 로맨스의 합성어로 '남자들 사이의 진한 유대와 우정'을 지칭하는 말)’은 ‘9월 평양 공동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두 정상은 이번 선언문에 지난 4.27 판문점 선언보다 한 발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전된 합의를 담았습니다. 청와대는 “실질적 종전선언을 했다”고 자평했습니다.

아마도 국민들께서는 이번 회담을 앞두고 이전보다 얼마나 진전된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가장 궁금했을 겁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을지, 비핵화는 정말 되는 건지, 교착상태인 북미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지 말이지요.

문 대통령은 평양을 출발하기 전 “김정은 위원장과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유관국과 전 세계, 그리고 국내 정치권에 전하는 메시지였다고 봅니다.

‘선언문’만 볼 게 아니라, 남북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하기까지 지난(至難)할 과정을 순수하고 의미 있게 받아들여 응원해 달라는 당부였겠지요.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흉금을 터놓고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 메시지가 김 위원장에 가 닿았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반도 평화, 나아가 통일로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난합니다. 김 위원장 역시 “우리 앞길에는 탄탄대로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상회담 마지막 날 두 정상은 케이블카를 타고 한민족의 상징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습니다.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못 본 장면입니다. 4·27 회담 때 ‘도보다리 대화’에 이은 명장면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천지에 우뚝 선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차 확인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귀경 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를 했는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핵화→종전선언→평화협정’의 한반도 평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넘어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엄청난 진전(tremendous progress)이 있었다"고 긍정 평가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 직후에는 ‘매우 흥분된다!(Very exciting!)’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 미국 뉴욕에서 유엔총회가 열리는데요. 여기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24일 예정)이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과 연내 종전선언을 위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모쪼록 북미 교착상태가 잘 풀리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도 앞당겨지길 기대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잘 알려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다녀왔는데요. 지난 2월 유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중 일부입니다.

그날 우리는 천우신조로 밝은 태양 아래 들꽃이 만발한 천지를 한없이 만끽했다. 안내원도 이렇게 좋은 날은 몇 년 만이라며 남쪽에서 손님 온 것을 천지도 환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의 ‘평양 2박3일’을 취재했던 내외신 2600여명 기자들도 수고하셨습니다. 서울과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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