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계룡건설 이승찬 사장. 계룡건설 홈페이지 캡쳐.
계룡건설 이승찬 사장. 계룡건설 홈페이지 캡쳐.

계룡건설은 이인구 회장이 작고한 뒤 아들 이승찬 대표가 이끌고 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그를 봤다. 그가 참석자들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분한테 “당신 무엇 때문에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오함마(망치)’로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대답하기 곤란하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냥 한 기업의 대표일 뿐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이 대표가 갖게 된 ‘다른 생각’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으로 들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계룡이 20억 원을 들여 충남대 고시생 기숙사인 청룡관을 리모델링 해주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인구 회장 1주기 추모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일이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사였으나 그의 ‘오함마 얘기’가 떠올랐다.

“당신 무엇 때문에 사업하나” 질문에 계룡 대표 ‘오함마 충격’

기업을 물려받은 아들이, 선친이 시작한 모교(충남대) 지원 사업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20억 원 쾌척도 기업의 규모로 보면 대단한 금액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경영을 시작한 젊은 기업인의 뭔가 ‘다른 생각’과 연관된 것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적지 않다. 올핸 두 항공사가 그 실상을 보여주었다. 대기업 하면, 불공정 경쟁, 정경유착, 관경(官經)유착, 부정부패 같은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어 자기들만 부(富)를 누린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지방에선 계룡건설 같은 ‘지역 대기업’도 그런 취급을 받곤 한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도 존경은 받지 못한다. 오히려 질시와 원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시사저널> 기사(2011년 6월)에 따르면, 대전 충남에서 가장 선호하는 기업으로 계룡건설이 뽑혔다. 하이닉스와 한화를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에서 계룡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룡이 장학재단도 운영하고 불우이웃이나 각급 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지역 행사를 후원하는 노력 등을 해왔으나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은 주지 못한 편이다. 

계룡을 포함한 모든 기업은 이윤 추구가 존재의 이유다. 사업이 잘 된다고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당신 회사, 돈 잘 버는데 왜 더 후하게 인심 쓰지 않느냐’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삼성 돈 20조를 풀면 200만 명에게 1000만 원씩 혜택이 돌아간다는 한 정치인의 말은 그야말로 정치적 발상일 뿐이다. 그게 정말 필요하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부자에겐 법보다 무서운 도덕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그 기업과 기업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수준의 문제다. 대한항공 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사안의 위법성보다 행태의 천박성에 놀랐다. 그러나 불효자를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듯 기업인의 부도덕성은 법으로 다스리기 힘들다. 대신 그런 기업인들이 누리는 부(富)는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와 다를 바 없게 되므로, 알고 보면 법보다 무서운 게 도덕이다.

이 정도로 형편없는 기업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지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높아지면 기업인으로서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을 고민해 보는 게 정상이다. 대기업 경영자도 법적으로는 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공인(公人)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다. 지역의 대표기업 오너라면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계룡은 이승찬 대표가 경영권을 이어 받은 뒤에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같다. 전문경영인이 잘 도와주는 덕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 대표가 오함마 같은 충격에서 정말로 뭔가를 일궈내려면 먼저 기업인으로서의 능력을 더 키워야 할 것이다. 기업인은 우선 기업을 통해 꿈꿀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한 기업 대표’ 이상이고 싶다는 게 그의 오함마 충격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목민심서』에는 ‘사업’과 ‘산업’의 의미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자기의 포부를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事業)이라고 하고, 일가(一家)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산업(産業)이라 하고, 천하의 사람들을 해쳐서 자기 일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원업(寃業· 내세에 뿌리는 악의 씨)이라 한다.”

과거 벼슬아치들에 해당되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기업인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사업’을 펼쳐보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정치인들 중에도 ‘산업자’나 ‘원업자’에 불과한 사람들이 있고, 기업인 중에도 그 공(功)이 국가와 천하에 미치는 자가 간혹 있다. 이런 기업인이야말로 진정한 ‘사업가’라 할 만하다. 우리 지역의 기업인 중에도 위대한 ‘사업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