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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 ‘들러리’ 정쟁에 반쪽 된 평양행
‘꽃할배’, ‘들러리’ 정쟁에 반쪽 된 평양행
  • 류재민 기자
  • 승인 2018.09.1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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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의 정치레이더 37]청와대‧보수야당 대치, 실종된 정상회담 ‘의제’

지난 달 1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이 있었다. 이날 이들은 정부와 국회 협치를 위해 오는 11월부터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하기로 약속했다. 청와대 제공.
지난 달 1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이 있었다. 이날 이들은 정부와 국회 협치를 위해 오는 11월부터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하기로 약속했다. 청와대 제공.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14일) 개성공단에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엽니다. 동시에 남북 실무회담도 열립니다.

남북 실무회담을 마치면 정상회담 방북단 규모가 최종 확정될 텐데요. 그보다 앞서 이번 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지요. 청와대가 국회의장단과 여야 5당 대표에 ‘국회‧정당특별대표단’ 자격으로 방북 동행을 제안한 얘기를 해볼 참입니다.

국회 의장단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청와대 제안에 ‘NO’ 했습니다. 그러니 ‘OK’한 대표들(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만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4.27판문점 선언 비준을 국회가 동의하느냐, 마느냐면서 한창 시끄러운 이때, 청와대는 왜 덜컥 정상회담 동행 카드를 던진 걸까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쌍수(雙手) 들고 평양행에 동참할 걸로 확신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보수 야당에 “같이 가자”고 한번 찔러 보고 “싫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협조하지 않는 세력으로 몰아붙일 요량이었는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국회의장단과 정당 대표에 평양행을 제안할 때 “정쟁으로 번지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장단은 1시간 만에 거절했습니다. 보수 야당 역시 “들러리밖에 더 하냐”고 반발했습니다. 결국 정쟁으로 번졌습니다. 다시 말해 ‘안 하니만 못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회의장단과 정당 대표가 평양에 가느냐, 마느냐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상회담 의제와 내용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당리당략은 거둬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술 더 떴습니다. 임 실장은 페이스북에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적었습니다.

‘꽃할배’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70~80대 원로 탤런트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블TV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원로급 중진 야당 대표들이 정상회담 방북에 동행해 달라는 취지를 재차 전달한 것인데요.

하지만 행정부(청와대)가 입법부(국회)를 존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더구나 보수 야당에는 그야말로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됐습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노발대발(怒發大發) 했습니다. (평양에) 안 간다고 했으면 그런 줄 알아야 하는데-예능을 다큐로 받은 건진 모르겠으나-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약 올린다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잘되도록 숨어서 도와야 한다. SNS에 ‘꽃할배’ 어쩌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왕 비서실장’이라고 불리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저도 (대통령)비서실장 했다”면서 “국회의장, 정당 대표들에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했더라도, ‘안 간다’고 하면 비서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어제(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제출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반대로 상정조차 못했습니다. ‘장군에 멍군’으로 받은 셈입니다.

정부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비용을 1년 치만 산정해 국회에 낸 비용추계서도 야권이 비준동의안 처리 불가에 명분을 제공한 모양새입니다. 항목별 예산(철도‧도로 연결 등)과 총예산이 4712억원이 든다는 예산서만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얼마나 쓰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빠진 채 말입니다.

정부 측은 “향후 북측과 협의해 사업 범위가 확정되면 전체 추계를 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이미 ‘처리 불가’로 당론을 모은 모양입니다.

국회는 지금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 말고도 처리할 ‘민생‧경제입법’이 산적(山積)해 있습니다. ‘고용쇼크’로 불릴 만큼 실업자 수는 늘어나고 경제는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건 정부나 정치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8월 16일)에서 국회와 정부 사이 생산적 협치를 위한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하자고 약속한 것이 한 달도 안 지났습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한 ‘협치(協治)’가 갈수록 진정성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민들 환영 속에 다녀와야 할 정상회담 방북단이 정치권만큼은 ‘반쪽’이 되고 마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못합니다. 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하는 소리가 이렇습니다. “굳이 안 간다는 사람들 억지로 데려갈 생각 말고, 가고 싶어도 못가는 기자들이나 더 보내 달라.”

방북 취재단 선정 기회조차 얻지 못한 기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도 다음 주 동대문으로 갑니다. 평양은 못 갔지만, 프레스센터(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3번째 남북 정상회담 취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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