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36] 병역특례 논란, 국회 입법 신중해야

리얼미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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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여럿이 모여 있다 보면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꺼리가 ‘군대 이야기’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저마다 그 시절 무용담을 주고받으며 ‘그들만의 추억여행’을 떠나지요. 그래서 여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싫어하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더 싫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건강한 남자라면 ‘병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또 국방의 의무는 납세와 근로, 교육과 함께 국민의 4대 의무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6·25 전쟁 이후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국가라는 점에서 병역은 필수 불가결한 의무로 법제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운동선수 ‘병역 특례’가 사회적 이슈입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국가대표팀 오지환‧박해민 선수가 논란의 단초였지요.

우리 정부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국위 선양’을 명분으로 운동선수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대표해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주는 ‘포상’ 성격인데요. 당시에는 ‘홍보성’ 기획이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도 시행 45년을 맞는 지금, 병역 특례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달갑지 않습니다. 국제대회 참가를 국위 선양보다 병역 특례에 목적을 두면서 제도 폐지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병역 문제는 비단 운동선수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유명 연예인들이 병역을 피하려고 얼마나 치졸한 행태를 보였는지 지켜봤지 않습니까.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병역 면제 논란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보니 제도 본연의 취지는 퇴색하고, 병역 특례자를 바라보는 여론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빌보드 1위를 두 번이나 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 이름을 딴 ‘BTS법’ 제정을 요구합니다. 국위 선양에 야구는 되고 노래는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어떤 정치인은 BTS를 병역 특례 논란과 비교했다 된서리를 맞기도 했습니다. 화가 난 팬들은 정치권을 향해 “정치적인 문제에 방탄소년단을 이용하지 말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지요.

논란의 최전선에 섰던 대표적 정치인이 바른미래당 하태경 국회의원입니다. 하 의원은 공개 사과 이후 병역 특례제도의 합리적 대안을 찾고자 ‘바른미래당 병역특례제도 개선TF’를 출범했습니다. 그 첫 일정으로 오늘(7일) 국회에서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병무청을 대상으로 ‘병역특례제도 현황 및 대책’ 관계부처 합동 보고를 받는다고 합니다.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현역 병사 의무 복무기간을 육군(해병대, 의경 포함) 기준 18개월(공군 22개월, 해군‧의무소방‧의무해경 20개월)로 2~3개월씩 단축했습니다.

그런데요. 왜 우리는 국방의 의무 앞에 ‘신성한’을 붙이면서 복무 기간은 줄이려고 애 쓰는 걸까요? 대통령선거 때마다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은 왜 빠지면 허전한 ‘단골 메뉴’가 되었을까요? 우리 아버지나 선배 세대는 당신들이 겪었던 ‘월남 스키부대’ 시절보다 지금이 복무 기간이나 병영 생활면에서 “훨씬 편해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말입니다.

복무기간의 길고 짧음보다 20대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군(軍)’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일 겁니다.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조직에서 자유를 제약받다보니 아들가진 부모들이나, 젊은이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바람이겠지요.

때문에 병역 특례나 군 복무기간 단축에 앞서 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군에서 ‘썩는다’는 생각보다, 자기계발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래서 제대하고 사회에 복귀하면 취업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자격증도 몇 개 취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운동선수 역시 상무와 경찰청 정원을 늘려, 보다 많은 선수들이 병역을 해결하면서 선수 생명을 이어갈 여건을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군인에게 훈련은 하지 말고 취업 공부나 시키라는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21세기 병영문화는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습니다. 병사들 여가 시간이 보장되고, 그 시간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선입견을 털어낼 만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려면 방산비리나 병역비리, 의문사 등 대한민국 군대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부터 근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군에 대한 국민 신뢰가 깃들고, 귀하게 키운 아들을 나라에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요?

국회에서는 이번 병역 특례 논란이 불거지자 관련 입법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병역 마일리지제’(각종 대회에서 순위에 따라 점수를 주고 일정 점수를 넘긴 이에게 병역특례를 허용하는 제도)나 세계대회 1위자만 병역의무를 면제하는 '세계 1등 청년 병역특례법', ‘선수 은퇴 후 복무’ 등이 대안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결국 핵심은 형평성과 공정성일 겁니다. 2001년 군필자 가산점 제도(군복무를 마친 공무원·공기업시험 응시자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폐지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남성 vs 여성’이란 대결적 프레임까지 등장했지 않습니까. 따라서 정치권은 입법 과정에서 현장 의견과 국민들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해야 합니다. 그래서 “흙수저라 군대 간다”는 우려를 떨쳐야 합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병역특례제도 개선 방향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요. ‘대상자는 확대하고, 수혜자는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28.6%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23.8%로 나왔습니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30.4%)은 ‘전면폐지’, 중도층(33.8%)은 ‘대상자확대‧수혜자축소’, 보수층(30.0%)은 ‘현행유지’가 각각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병역 특례를 유지하는 쪽과 줄이자는 쪽, 아예 없애자는 쪽이 팽팽히 대립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합의’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은 정치권이 앞장서 해야 할 일입니다.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만 마냥 보고 있기에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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