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아려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달려가 당장 허리를 작신 분질렀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함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비굴하게 숨을 죽였다. 다른 사내가 채린을 어깨에 들쳐 업고 내 앞을 지났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 없는 사람처럼 그런 광경을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채린은 나를 발견하자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 때마다 더욱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었다. 그녀가 내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발버둥 쳤지만 나는 냉담한 모습으로 도리어 그녀를 외면한 채 등을 돌렸다.

속으로는 채린을 구해야 한다고 소리치면서도 겉으로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내가 내게 뭐하는 놈이냐고 윽박질렀다면 나는 겁에 질려 모래조각같이 무너져 내리고 말 것 같았다.

채린이 그의 어깨에 얹혀 주점의 입구를 막 벗어나려 할 때 기둥에 기대섰던 내 몸이 연체동물같이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내가 왜 이러지? 눈앞에 그토록 보고 싶던 채린이 있는데 왜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는 거야. 저들의 머리통을 날려서라도 채린을 구해야 하는 거 아냐. 얼마나 많은 날을 뜬 눈으로 지새웠는데, 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태웠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권총이 허리에 꽂혀 있잖아. 그것을 뽑아들어. 저놈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내줘. 나는 할 수 있어. 지금 당장 달려가 후두부에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바람구멍을 내주란 말이야.’

가슴이 답답했다. 묵직한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호흡 하는 것조차 벅찼다. 머릿속을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얽어매고 있던 실핏줄이 여기저기서 퍽퍽 소리를 내며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채린을 구하지 못할 정도의 용기도 없다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채린을 데려간 쪽으로 뒤따라갔다.

사내는 주점과 마주한 널찍한 방으로 그녀를 데려가 무거운 어깨 짐을 내팽개치듯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파랗게 질려있었다.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벗어

사내는 명령 투로 말을 뱉고 이내 자신이 걸치고 있던 거적 같은 옷을 바닥에 벗어던졌다. 털북숭이 가슴과 근육질의 살덩이가 드러났다. 눈알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는 짐승이었다. 그녀를 노려보는 눈빛이 굶주린 이리의 눈빛 이었다. 거친 호흡을 연신 내뱉으며 식식거렸다.

, 벗으라니까.”

그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쪼그린 채 떨고 있던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녀는 거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신에게 덮쳐온 산 그림자 같은 사내의 힘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짐승 같은 사내는 채린의 윗옷을 잡히는 데로 갈기갈기 찢었다. 그럴 때마다 채린은 찢어지는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찢긴 옷 속으로 그녀의 속살이 드러나 보였다. 우윳빛 가슴과 손때 묻지 않은 유두, 잘록하게 드러난 허리…….

순식간에 백옥같이 고운 그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작은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사내는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찢어진 옷 조각으로 알몸을 가리자 사내는 사정없이 그것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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