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의 내년 예산이 크게 삭감될 전망이다. 정부는 예산을 짜면서 당초 금액보다 26% 줄어든 4868억 원을 편성했다. 이 때문에 기초과학연구원 본원과 25개 연구단캠퍼스 조성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과학벨트 완공 시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연의 이유가 정부의 재정 문제보다 게으른 과학자 탓이라는 게 청와대 설명이니 의아하다.

과학벨트는 세계적인 우수 인력을 유치해서 노벨상까지 탈 수 있는 연구역량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말 그대로 국제적인 과학비즈니스벨트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이후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사업 규모가 크게 줄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사업이 명실상부한 국가사업인 데도 땅값을 대전시가 내라는 억지 논리로 발목을 잡았다. 대전시는 어쩔 수 없이 과학공원을 사업 부지로 내놓았다.

당시 대전시장과 여당 국회의원들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시간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과학벨트사업은 하루라도 빨리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는 명분을 ‘만들어서’ 정부의 억지 요구에 응했다. 이 사업을 자문을 했던 대덕특구의 과학자들도 조기 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과학벨트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예산이 깎이면서 속도를 낼 수 없게 됐다.

청와대는 과학자들 탓인 것처럼 말한다.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지난 26일 “이번 정부 들어 (사업이) 지지부진한 건 아니고, 지난 정부에서 지지부진한 것을 작년에 총 정비해서 제대로 속도를 내서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과학벨트 사업의 핵심인 ‘라온 중이온가속기’를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그 가속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고 했다. 지연의 이유가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치 과학자들이 ‘중이온 가속기의 구축 방법’을 결정하지 못한 탓으로 들린다. 

과학벨트 예산 삭감이 ‘게으른 과학들 탓’이라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청와대 말대로라면 ‘정부가 가속기 살 돈은 준비해 놨는데 과학자들이 어떤 가속기로 해야 될지 몰라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누가 이런 말을 곧이듣겠나? 내년에는 ‘소득주도 성장’에 보다 많은 예산을 퍼붓는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과학벨트 사업이 소득주도 성장의 피해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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