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모습.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모습. 자료사진.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가장 무서워하는 3가지가 있다. 언론 여론(지지율) 통계가 그것이다. 모두 대통령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3가지는 대통령이 유능한지 무능한지, 청렴한지 사기꾼인지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통령의 성적표 역할을 한다. 대통령도 성적표는 두렵다. 그 중 통계가 다른 점은 언론과 여론에 비해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통계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대통령이 두려워하는 언론 지지율 통계

날마다 신문 방송에서 쏟아지는 기사와 논평 가운데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다수 포함돼 있다. 대통령이 어려운 일을 해내면 후한 점수를 주는 기사들이 나오고, 정부의 큰 실책이 드러나면 비판 기사가 잔뜩 실린다. 다만 언론사의 평가에는 보수언론은 진보정권 평가에 야박하고, 진보언론은 보수정권 평가에 각박한, ‘진영논리’가 반영되기 때문에 국민들도 이를 감안해서 받아들인다.

언론보다 대통령이 더 무서워하는 것은 여론 곧 ‘대통령 지지율’이다. 청와대는 지지율에 따라 울고 웃는다. 정치도 정책도 지지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지율이 높으면 소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지만, 떨어지면 정책의 추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국정운영의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수치가 된다. 

통계는 언론이나 여론조사에 비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며 공정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이념적 성향이 어느 쪽이든 진영 논리 때문에 신뢰성에 한계가 있고, 여론조사는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 점수’에 가깝다. 언론과 여론은 대통령의 업무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하면 통계는 대통령의 성적표를 알 수 있는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수치다. 

물론 통계의 객관성에도 한계는 있다. 통계는 누군가의 분석과 설명을 통해서 그 의미가 대중에게 전달된다. 같은 통계자료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통계를 낼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의 국민가계소득 통계수치도 표본구성을 달리하면 본래 발표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청와대가 표본을 조정해서 다시 통계를 내보니 본래 것보다 유리한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의 본래 발표가 잘못은 아니었고, 통계청장의 잘못도 아니다. 김동연 부총리도 “해석상의 문제다. 통계의 오류는 아니다”고 했다. 통계에는 문제가 없는데 청와대가 아전인수식으로 수정해 보고 통계청을 원망한 것이다. 이런 경우 기관장은 죄가 없어도 물러나게 돼 있다. 그 통계청장은 문 대통령 자신이 임명한 사람인데 일부러 대통령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통계를 낼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통령 자신의 경제 성적이 나빴을 뿐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낙제를 받았으면 공부를 더하거나 공부 방법을 바꾸면 된다. 혹시 본래 실력은 있는 학생인데 운이 나빠 시험을 망쳤다면 다음 시험을 잘 보면 된다. 문제는 실력은 안 되는데 억지로 시험점수를 올리려는 학생이다. 교육부는 이런 학생들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걸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대통령 성적표의 관리’는 더 엄격해야 된다. 통계청에도 교육부 같은 조치가 필요해졌다. 누구보다 ‘공정 사회’를 외치는 정권에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성적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애먼 통계청장을 날리고 청와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혔으니 통계청은 이제 ‘문재인의 사설(私設) 통계청’처럼 되었다. 그동안 사법기관 등 많은 정부 기관이 권력이 바뀔 때마다 새 권력의 시녀가 되곤 했는데 이제는 통계청까지 그 대열에 들어가게 됐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영혼있는 공직자 한 명을 쫓아냈다. 통계청장 경질은 이 정권에서도 영혼을 팔아야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꼴이다. 공직자의 영혼을 보장해주려면 임명권자 자신이 그만한 능력을 가져야 된다는 점도 일깨워줬다.

'대통령 성적표 관리 기관'에 대한 청와대의 유혹

권력자의 리더십은 자신의 업적에서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바탕은 ‘신뢰’에 있다. 운좋게 커다란 업적을 이뤄도 국민의 믿음을 받지 못하면 그 권력은 오래 갈 수 없다. 문 대통령에 대한 초반 인기는, 아직 업적은 없어도 국민들에게 그런 신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쩡한 통계청장을 내쫓고 청와대 편에서 통계자료를 만지작거린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으니, 국민들은 대통령을 어떻게 보겠는가?

국가의 모든 부처는 대통령이 관리 감독하면서 평가하고 책임도 묻는다. 통계청도 그런 부서 중 하나다. 그러나 통계청이 다른 부처와 다른 것은 대통령의 업무성적을 관리하는 기관이란 점이다. 통계청이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업무성적이라 할 수 있는 각종 통계 자료를 관리 분석하는 기관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선, 해서는 안 되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지금 통계청이 권력으로부터 겪는 수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통계청은 국가의 각종 통계와 지표를 관리하는 곳이다. 정부는 이것을 기준으로 나라 살림도 짜고 정책도 결정한다. 통계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통계가 없다고 가정해보면 그 가치를 쉽게 알 수 있다. 평소 공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안다. 국가 통계의 중요성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믿지 못할 통계는 아무 쓸모가 없다.

통계청장 경질은 비록 차관급 한 명의 일이지만 문 대통령이 취한 인사 가운데 가장 큰 실수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수치는 색안경을 끼고 봐야 될 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 ‘경제 우등생 성적표’가 나오더라도, 누군가 ‘그거 진짜야?’라고 물으면 증명할 방법이 없다. 엉터리 인사 한 번으로 멀쩡한 국가 통계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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