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74]
탈북자 [74]
  • 이광희
  • 승인 2018.08.29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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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바퀴벌레처럼 침대 시트 속으로 기어들어 반듯하게 누웠다. 우수리스크에서 만났던 사내들의 손목에 새겨진 검은 독거미 문신이 떠올랐다. 까만 잉크를 피부에 새겨 만든 독거미는 어느새 꿈틀거리며 기어 나와 내 가슴 위를 걷고 있었다. 독거미는 내 오른쪽 겨드랑이를 파고들다 그대로 머리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살금살금 기어오르는 독거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 목을 지난 뒤 오른쪽 볼을 타고 검은 발을 내디딜 때쯤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에는 보기 흉한 털이 잔뜩 돋아 있었다. 주름진 몸통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잔털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나는 독거미가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스라치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독거미는 콧잔등을 지나다 흔들리는 내 눈빛과 마주치자 나를 노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까만 독거미의 눈알이 유독 빛났을 때 나는 호흡을 멈췄다. 금방이라도 독거미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부어오른 살점을 물고 잔인한 독을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트릴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독거미의 눈을 응시했다. 그제야 독거미가 다시 움직이며 미간을 지나 머리칼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 속에 기어든 독거미는 내 몸의 열기를 이용해 알을 깠고 곧이어 독거미 새끼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것들은 내 생각을 한 개씩 물고 머리카락을 타고 볼과 이불로 내려왔다. 머리가 심하게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을 때는 식은땀이 귀 뒤를 적시며 흘러 내렸다. 베게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파릇한 한기에 오싹 놀라며 눈을 떴다.

그 때 현관문이 열리며 따냐가 들어 왔다. 그녀는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약간의 고기와 감자가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깨어 나셨군요. 몸은 좀 어떠세요?”

예 견딜 만합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옷을 완전히 버려서 호텔에 들려 새 옷을 가져 왔어요. 기운이 나시면 갈아입으세요. 하지만 당분간은 이대로 쉬셔야 해요. 건강상태가 아주 나빠 보여요.”

“.........”

그녀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는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옷이 담긴 쇼핑백을 침대 옆에다 내려놓고 주방으로 가서는 장바구니를 풀었다. 그녀는 몇 조각의 질 나쁜 고기로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심하고 있었다.

고기스프를 맛있게 끓여 드릴게요. 드시고 기운을 차리셔야지요.”

어제 곧장 이곳으로 왔습니까? 기억이 전혀 없어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빨리 기운 차리실 생각이나 하세요.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 지셨어요.”

채린의 얘기는 없습니까?”

러시아에서는 더운 음식을 가리아체라고 해요. 고기를 잘게 썰고 감자와 야채를 듬뿍 넣은 뒤 끓이지요. 다음에 우꾸로프 향료 풀을 넣으면 제 맛이 나요. 아참 장 기자님은 우꾸로프 향료 풀을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하셨던가요. 그럴 테지요. 향료가 진하긴 진하죠. 외국인들이 느끼기엔 역겨울 수도 있을 거예요. 다른 외국인들에게서도 간간이 그런 얘기를 듣거든요.”

“........”

그녀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저녁 준비를 하며 음식 얘기를 계속 했다.

나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저무는 햇살이 창틀에 기대서서 한가로이 방 안을 엿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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