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홋카에 있는 루스 카야.”

루스 카야?”

, 루스 카야 이즈바.”

루스 카야 이즈바!”

나는 같은 소리를 되씹으며 권총의 공이를 풀었다.

그는 죽음에서 살아난 불사신 같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풀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는 잔인성에 치를 떨듯이 내 눈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나는 그에게서 돌아서려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사내의 턱을 향해 권총을 날렸다. 그자 역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나는 다시 그의 관자놀이를 내리 찍었다.

골목 안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도살당한 소처럼 좁은 골목길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야마모토를 추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됐다. 현장을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지나는 승용차를 잡아탔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차량이 돈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영업용 택시로 돌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년의 운전자는 달리면서도 연신 백미러로 나를 훑어보았다. 나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내게서 범죄를 저지른 뒤 다급하게 달아나는 마피아의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다. 살기가 감도는 내 눈빛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 피멍이 든 몸, 거친 숨을 연신 내뿜는 내 모습이 운전자를 위축시켰던 모양이었다. 백미러 속에서 내 눈빛과 마주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돌렸다.

나는 먼저 운전사를 안정시키기 위해 주머니 속에서 미화 5불짜리 지폐를 꺼낸 뒤 어깨 너머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중국계 마피아를 만나 몰매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제야 그는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는 차를 쏜살같이 몰아 차이나타운 근처에서 나를 내려 주었다.

따냐는 피투성이가 된 나를 발견하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차에서 내린 뒤에도 한참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따냐에게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일렀다. 또 한적한 곳에 도착하면 즉시 세르게이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에게 중국계 마피아들이 몰려오는 것을 막아 달라는 주문도 함께 할 것을 당부했다. 이런 주문이 빅또르 김의 부탁임을 상기시켰다.

따냐는 내가 차에 오르자 황급히 차를 몰았다. 우수리스크 시내를 빠져나온 뒤 시속 1백 킬로 미터의 속도로 덜덜거리는 포로를 내달렸다.

그녀는 내 피 냄새를 맡은 탓인지 적잖게 흥분했다. 자신에게도 닥쳐올지 모르는 공포에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떨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도중 있을지도 모를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권총을 의자 밑의 스프링에 숨겼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중국계 마피아들이 뒤쫓아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신 차창 밖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의도적으로 턱뼈를 분질러 놓았기 때문에 내 행적에 대해서는 당분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곧바로 나홋카로 달려 갈 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따냐는 우수리스크를 벗어난 뒤 30분 정도를 달리다 로마노프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휴게소라고는 하지만 허름한 통나무집에 간이 슈퍼가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씻고 차에 올랐다. 그러는 사이 따냐는 세르게이에게 전화를 건 뒤 또 다시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거친 숨을 토하며 언덕을 오른 말처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따냐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즉시 부총영사인 나 선배의 공관에 내려 줄 것을 당부한 다음 눈을 감았다.

노란 하늘이 감긴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온통 세상이 노란 빛으로 변했다. 어느 때보다 평온한 느낌이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