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지도
호이안 지도
광조회관 본관
광조회관 본관

중국 후한(後漢)의 지배를 받던 베트남인들은 192년 투본강(sông Thu Bồn: 秋盆河) 하구인 후에(Hue: 順化)에 참파왕국(Champa: 192~1832)을 세웠다. 중국에서는 참파왕국을 임읍(林邑: Lin-yi)이라고 불렀으며, 참파왕국은 4세기 중엽에는 오늘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후난 왕국(Funan: phnom, 扶南)까지 병합하는 등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16세기 중엽 신항로 개척에 나선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상인들은 당시 동남아에서 가장 융성하던 참파왕국의 람압포(Lâm Ấp Phố)를  페르시아 만에서 중국 명(明)으로 이어지는 무역항로의 중간기착지로 삼았는데, 다낭 남쪽 약30km 떨어진 호이안(Hội An/會安)이 람압포였다. 동남아 최대항구였던 람압포에서는 동․서양의 물건이 교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역상들의 집단거주지까지 형성되어 동․서양의 문물이 크게 유통되었다. 특히 중국 상인과 일본상인들의 거주지가 많이 남아있는데, 16~17세기에는 일본상인 1000여 명 이상이 집단거주하기도 했으나 에도 시대(江戶時代)의 쇄국정책으로 점차 줄어들면서 마을은 사라졌다.    

국제무역 항 호이안은 하이포(Haifo) 또는 임읍포(林邑浦)라고 불렀으며, ‘베트남의 바다의 실크로드’였으나, 18세기 이후 무역의 중심이 남중국 해변인 다낭으로 옮겨지면서 잊혀진 항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 덕택에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무역항이 잘 보전되어 있어서 1999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파왕국은 하노이를 도읍지로 하는 여왕조(黎)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고, 다낭 서쪽 약70km에 참파왕국의 도읍지 미선 유적지가 있다.

미선 유적지는 월남전 때 대부분 파괴되어 20여개만 남아있으나, 1999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에 속해왔으나,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한자문화를 버리고 유럽화 되면서 지명이나 문물의 명칭이 모두 서구화로 변했다.
 

투본강
투본강
투본강 다리
투본강 다리

 호이안은 인구 8만 명으로서 호이안에서 약30㎞ 떨어진 베트남 제4대도시인 인구 100만 명의 다낭과 비교할 때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10대 관광지’에 속할 만큼 유명한 관광지이다. 여행객은 호이안에서 숙소를 정할 수도 있지만 다낭 북쪽의 후에까지 여행하기 위해서 다낭에 숙소를 두고 세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세 도시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음식점, 기념품판매소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다낭이나 호이안, 후에 등지에서 각각 숙소를 정하고 관광할 수도 있는데, 참고로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시외버스(노란 버스: 18,000동)와 택시(30만동, 한화 약15,000원)로 갈 수 있다(2018. 08.06. 다낭(1) 참조).
 

구시가지 건물
구시가지 건물
전통가게
구시가지 전통가게

호이안은 구시가지와 투본강 건너의 신시가지로 나뉘며, 구시가지는 전통보존을 위하여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운행을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호이안버스터미널에서 호텔까지 이동할 때 걸어서 가거나 씨클로를 타야하는 경우도 있다. 구시가지 관광은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데, 입장권의 구입과 사용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유명관광지 어디서든지 흔한 이용권이나 자유이용권이 아니라 성격이 비슷한 명소를 각각 그룹으로 묶어서 팔고, 관람객들은 입장하는 곳마다 입장권을 제출하면 검표원들이 하나씩 찢어낸다.

호이안에는 모두 6군데의 매표소가 있으며, 가령 1번 입장권은 3개의 박물관, 2번 입장권은 세 곳의 중화회관, 3번 입장권은 4곳의 전통 가옥, 4번은 전통 음악 콘서트와 수공예품 상점, 5번은 내원교(內院橋), 꾸안 꽁 사원 등이다. 그러나  1번 입장권으로는 모든 박물관을 볼 수 없고 세 곳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티켓은 한 장에 9만 동(한화 4,500원)이다. 호이안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에는 입장료가 요금에 포함되어 있어서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ㆍ1번 입장권 : 박물관(역사 문화 박물관, 도자기 무역박물관, 문화박물관)
ㆍ2번 입장권 : 중화회관(광조회관, 복건 회관, 조주 회관)
ㆍ3번 입장권 : 전통 가옥(턴키 고택, 쩐가 사당, 꽌탕 가옥, 풍흥 고가)
ㆍ4번 입장권 : 전통 음악 콘서트와 수공예품 상점
ㆍ5번 입장권 : 내원교, 꾸안 꽁 사원 

 

광조회관 패루
광조회관 패루

항구도시로서 흥청거렸던 호이안 구시가지의 벽돌이나 진흙으로 지은 아담한 1~2층의 건물들은 대부분 외국상인들이 살던 점포들이고, 구시가지는 쩐푸(Tran Phu)거리, 남쪽 응우옌 타이 혹(Nguyen Thai Hoc)거리, 강변의 박당(Bac Dang) 거리 등으로 세분된다.

그런데, 중국인이 살던 건물은 건물 전체를 중국인 특유의 붉은 빛깔로, 베트남인이 살던 건물은 베트남인의 전통 색깔인 노란 색으로 건물 외벽을 단장해서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색 찬란한 색깔들이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구시가지에는 약200년 전의 건물 약 800여 채와 골목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 그림 가게, 기념품 가게, 옷 가게들이어서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아시아의 중세로 돌아간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관우
관우
관우 기마상
관우 기마상

구시가지 관광의 출발은 쩐푸 꺼리의 서쪽 끝에 있는 광조회관(廣肇會館)으로서 광조회관은 1786년 중국 상인들이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자 숙소이며, 무역장소였다. 중국인들은  큰 거리나 사당 앞에 우리의 홍살문처럼 패루(牌樓)를 세우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한족인 명(明: 1368~1644)은 북경의 명13릉이나 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부박물관, 중경기념당에서 볼 수 있듯이 흰색 바탕에 푸른색 지붕을 세웠고, 만주족인 청(淸: 1618~1924)은 북경의 이화원에서 볼 수 있듯이 붉은 바탕의 패루를 세웠는데, 광조회관의 붉은 칠한 패루는 청시대세 세운 패루임을 알게 해준다.

패루를 지나면 본전 건물인데, 본전의 두 개의 현판 중 하나는 ‘자운경해(慈雲鏡海)’이고, 다른 하나는 ‘호의가가(好義可嘉)’이다. 전자는 자애로운 구름과 거울 같은 바다로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그들이 바다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고, 후자는 의로움을 좋아하는 것은 가히 기릴만하다는 화교들이 이상을 나타낸 것이다.

광조회관은 바다를 무대로 교역하던 광동상인들이 풍랑이나 태풍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바다의 여신에게 기도하며, 또 재물을 많이 벌수 있도록 재물의 신으로 여기는 관우, 그리고 최초로 바다를 건너온 그들의 조상을 제사 지냈는데,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열엿샛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광조회관 안의 수많은 건물의 각 벽면마다 관우를 비롯한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을 칼라로 그린 그림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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