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71]
탈북자 [71]
  • 이광희
  • 승인 2018.08.2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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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인성의 극치를 경험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나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가는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특수부대 생활을 통해 뼛속에 배였던 잔인성이 오늘에 와서야 하얀 알약이 녹아내리듯 조금씩 배어 나왔다.

나는 쓰러진 채 버둥거리고 있는 사내의 우측 갈비뼈 하단 부를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구두 끝으로 차올렸다.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길게 혓바닥을 빼물더니 흰 거품을 토했다.

그러자 바로 곁에서 떨고 있던 사내가 내 눈치를 힐끗 살피며 도망을 가려는 듯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는 나의 잔인성에 치를 떨고 있었다. 마지막 사내였다. 내 앞가슴을 주먹으로 짓이겼던 그 놈이었다. 기분 나쁜 인상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목덜미를 끌어당기며 귀에다 총구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그 때까지 잠겨 있던 권총의 자물쇠를 서서히 풀었다. 그는 생땀을 바짝바짝 흘리며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살려달라는 말만을 더듬거리며 되풀이했다. 귀를 파고드는 싸늘한 총의 감촉이 그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귀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속삭이듯 입을 무겁게 열었다.

조금 전에 달아났던 야마모토와 한패지 그렇지, 그놈이 너희들의 하수인으로 일하고 있고, 내말이 맞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 묻은 손으로 주머니 속에서 채린의 사진을 끄집어 낸 뒤 그의 눈앞에 들이댔다. 그리고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이에게 사탕을 빨리는 말투로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나의 목소리에는 이리의 이빨 같은 잔인성이 숨어 있었고 눈에는 여우의 간교함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오한이 들린 듯 말없이 떨고만 있었다.

나는 더욱 거세게 귀에다 권총을 들이댔다. 정신병자의 웃음을 머금으며 그의 귀에다 더욱 작은 목소리로 가시가 돋친 솜사탕 같이 속삭였다.

그제야 그는 나나나홋카 바라고 더듬거렸다. 그러면서도 곁눈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눈빛은 암캉아지의 그것과 흡사하게 나에게 꼬리를 쳤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쥐새끼 같은 눈알을 반짝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결코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귀에다 속삭였다. 그것은 악마의 소리였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내 스스로가 들어도 온 몸의 잔털이 일어서는 마성을 내가 뱉고 있는 것이었다.

거짓말하면 죽어. .”

“......”

솔직하게 말해.”

그는 더욱 세차게 떨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귀에다 대고 있던 권총의 공이를 뒤로 당겼다. 촘촘히 박힌 황금빛 탄알이 나를 자극시켰다. 명령 체계를 벗어난 손가락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더욱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온몸이 바스스 하는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피 묻은 채린의 사진을 그의 눈앞에 바싹 들이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어.”

그리고는 손가락이 그 자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방아쇠에 힘을 넣었다. 그제야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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