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안희정 재판을 보다
‘신과 함께’ 안희정 재판을 보다
  • 류재민 기자
  • 승인 2018.08.17 1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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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의 정치레이더 33] 진실과 사실 사이에 선 법의 양면성

여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여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1심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영화 ‘신과 함께2-인과 연’(김용화 감독)이 전편에 이어 ‘쌍(雙)천만 관객’ 흥행몰이 중입니다.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은 망자(亡者)가 지옥 재판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환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그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인(因)과 연(緣)이 참 오묘하다는 것과 사소한 인연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영화 홍보와 감상을 전하려는 건 아니고요. 이승에서 ‘지옥 같은’ 재판을 받고 있는 한 정치인이 문득 떠올라서입니다. 누군지 짐작하시지요? 이번 주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안희정 재판’입니다.

지난 14일이었지요.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 선고 이후 온‧오프라인에서는 논쟁이 뜨겁습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존재하는 것이 인간계 법칙이지요. 안 전 지사는 재판을 마치고 나와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환생’할 수 있을까요?

이번 재판 결과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선 “예상한 결과”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영화 속 지옥에서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만, 인간계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이 아닙니다. 합리적 사실과 증거에 입각해 법률상 유무죄와 형량을 판정하는 곳입니다. 혐의는 있어도 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처벌 받지 않습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유무죄 판단에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법원은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성폭행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봤습니다. 안 전 지사의 위력은 인정하면서도 위력을 이용한 성폭행 근거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 전 지사에 씌워진 관련 혐의 10개 모두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안 전 지사 재판이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항소심과 상고심(대법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선 이번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안 전 지사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유형의 증거’가 ‘무형의 증거’를 앞서는 우리나라 법해석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만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 둘 중 한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혹은 자기 행동이 ‘죄’인 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종 판결은 어느 한쪽에 분명 억울할 겁니다. 생전에 뒤집을 수 없을 억울한 판결이라면, 영화에서처럼 지옥에 가서야 ‘진실’을 밝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 인연은 이미 인간계에서 만큼은 악연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런데요. 재판부는 이번 판결 책임을 현행법상 한계로 인한 ‘입법의 몫’으로 돌렸습니다. 대한민국 ‘입법’은 국회가 합니다. 그래서 국가적‧사회적 굵직한 재판 결과가 나오면 여야 대변인 논평 앞머리는 이렇습니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합니다.” 국민들은 존중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할지언정, 법을 만드는 주체로선 존중한다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국민들이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는 법다운 법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미국과 유럽 일부 주(州)와 국가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을 시행 중입니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를 한 경우 이를 강간으로 보고 처벌하는 법제도를 뜻합니다.

나아가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는 상대방의 적극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스웨덴은 최근 ‘#미투(#Me Too, 나도 피해자)운동’ 영향으로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여성가족부는 어제(16일) “이번 판결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미투 운동 또한 폄훼되지 않고 지속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판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오늘 아침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 민스 노 룰’ 관련 여야 여성의원 긴급 간담회를 열어 ‘권력형 성범죄’ 보완 입법을 논의했습니다. 이러다 ‘안희정 법’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 미투 이후 현재 국회에 발의해 쌓여있는 미투 법안만 100건이 넘는다고 하니 주구장창 법안만 발의할 게 아닙니다.

앞서 소개한 영화에서 성주신(집을 지키는 신)이 한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쁜 인간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는 것이지. 원망스럽고 원통할 때 모든 걸 거꾸로 생각해 봐. 그럼 풀릴 거다. 인간도, 세상도, 우주도.” 보이지 않는다고 죄가 없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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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18-08-20 00:15:12
무죄판결후 관련기사들을 최대한 많이 검색해보았습니다. 한쪽주장을 받아쓰기하고 선정적제목으로 낚는 기레기들속에서 돋보이는 기자분이네요. 류재민기자님,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