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누구든 처음 일을 맡으면 그 일을 배워야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이 된 사람들은 자치단체장 업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새내기 공무원들은 선배들이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자치단체장은 대놓고 배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소홀하면 단체장 본인에게도 조직에게도 피해가 따르게 된다.

구청장을 지낸 분에게 들은 ‘초임 구청장 학습기(記)’는 참고할 만하다. 머리가 좋아 비록 구청장 초임 때라고 해도 업무보고를 한번만 받아도 다 파악할 수 있을 듯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알지 못하겠더라고 했다. 그는 간부회의를 적극 활용하기로 맘먹었다. 실국장회의를 할 때마다 각종 사안들에 대해 열심히 묻고 토론하면서 일을 익혔다. 

실국장회의에서 파악이 다 안 된 부분은 과장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충분하지 않으면 담당자에게 물어보는 식으로 모든 업무를 꼼꼼하게 파악해나갔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하니까 구청 업무와 조직의 시스템이 머리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업무를 장악해야 조직도 장악할 수 있다”고 했다. 업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였다.

시장 주재 주간업무회의 부시장에게 넘긴 대전시장

지금도 많은 초임들은 이런 식으로 배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허태정 대전시장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가 취임한 이후 시장 주재로 매주 열리던 실국장회의가 월 한 차례로 축소됐다. 시장은 월 1회 중요 현안만 챙기고 나머지는 부시장이 매주 챙기는 형식이다. 중요 시정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 회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나, 결과적으론 줄곧 시장이 해오던 주간회의를 부시장이 대신하는 꼴이 됐다. 

초임 시장이 주재하는 업무회의는 새 시장의 행정철학을 조직원들이 공유하는 기회가 된다. 조직원들이 시장의 생각을 다른 간부를 통해 듣는 것과 시장 본인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업무회의는 새 시장이 일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조직원 입장에서는 새 시장의 생각을 파악하는 기회다. 임기 초엔 시장 주재 회의를 늘리는 게 정상이다.

시장이 주재하는 업무회의는 단순한 회의가 아니다. 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각 부서 간부와 조직원들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업무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보고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부시장이 주재하는 회의의 무게감이 같을 수 없다. 시장 주재 회의가 줄었다는 것은 공무원의 업무 강도가 그만큼 느슨해진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시도지사들은 일주일에 한번은 간부회의를 주재한다. 역대 대전 충청 시도지사 가운데도 한 달에 한 번만 하는 경우는 본 기억이 없다. 

초임 시장이 업무 파악에 소극적이면, 업무는 물론 눈에는 잘 안 보이는 시스템 문제, 분위기 등 조직 전반을 파악하는 데도 불리하다. 어찌 보면 조직의 수장으로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업무회의나 토론 과정에서 업무 담당자의 능력과 품성도 알게 되고 이것이 인사에 적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지금처럼 하면 유능한 인재도, 시장이 챙기는 업무에서 빠져 있다면 시장을 만날 기회조차 없다. 

월1회, 그것도 한정된 업무만 가지고 실국장과 회의를 하는 방식에선 대전시의 많은 공무원들에게 허 시장은 남의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전히 부시장과 실국장의 손안에 있을 뿐이다. 임기 초반인 만큼 시장은 가급적 자주 업무 보고를 받고 챙기는 분야도 최대한 넓히는 게 맞다. 그리고 나서 업무 파악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판단될 때 시장 자신의 전념 업무를 선별하는 게 마땅하다.

정치적 능력에도 업무 장악 못해 파멸한 정권

허 시장은 이제 임기를 시작한 만큼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묻든 문제될 게 없다. 부하 직원에게도 묻고 또 묻는 게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일을 잘 모른다면 그땐 시장의 허물이 된다. 150만 도시 살림의 책임자가 시정을 잘 모르는 건 그냥 허물이 아니라 시민들에 대한 큰 죄다. 그때는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혹시, 부시장 등 부하 공무원들이 잘 협조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시민들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보겠다는 것이 시장 마음가짐이어서 시장 자신은 한 발 빼도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면 큰 오산이다. 업무를 명실상부하게 아래 사람들에게 위임하는 경우에도 위임자(시장)가 그 일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짜장면은 주방장이 만들지만 주인이 그 일을 잘 모르면 그 식당은 오래가기 힘들다. 장(長)이 업무를 잘 몰라도 그 조직이 잘 돌아간다면 굳이 장을 둘 이유가 없다.

어떤 장(長)은 표를 얻는 데 재주가 있어 용케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업무를 모르면 측근에게조차 농간을 당하고 정권도 본인도 파국을 맞기 십상이다. 정치적 능력이 있는 경우조차 업무에 무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박근혜 정권의 파멸은 보여준다. 과거, 하늘같던 임금들도 본인이 직접 배우지 않고는 그런 위험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임금과 신하가 묻고 대답하는 경연(經筵)은 학문과 수양의 목적도 있었지만 업무 능력 배양이 현실적 목적이었다.

초임 단체장들은 가급적 폭넓게, 자주, 빨리 업무를 배워야 한다.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업무가 머리에 들어오고 조직도 장악할 수 있다. 초임 시장이 처음부터 자기 업무를 스스로 제한하고, 시장 주재 주간업무회의를 사실상 부시장에게 넘긴 건 이해하기 어렵다. 새 시장이 업무를 기피한다는 인상을 주면 조직에는 나태와 부패의 독버섯이 먼저 자라게 된다. 시장은 그런 오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