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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68]
탈북자 [68]
  • 이광희
  • 승인 2018.08.10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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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뭣 하러 왔느냐니까. 말이 안 들려. 놀러왔어. 아니면 재미 보러 왔어?”

“......”

이 새끼가 대답이 없어, 묻는 말이 말 같지 않아?”

멀뚱하게 쳐다봤다.

나 말이오?”

나는 아무 말도 못들은 척 대답했다.

그렇다면,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그 사내는 기분 나쁜 어투로 내게 더욱 다가서며 가래침을 땅바닥에 퇵 뱉었다. 순간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내 가슴을 향해 느닷없이 발을 날렸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닥친 일이라 숨 들이쉴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그러자 또 다른 사내가 다가와 내 옆구리를 있는 힘을 다해 힘껏 찼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행히 팔 굽에 그의 발이 걸려 정확히 맞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시도 더 버틸 수가 없었다. 꼬꾸라진 채 흙바닥에 얼굴을 쑤셔 박고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하나같이 검은색 바지에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상의는 각각이었지만 팔목에는 독거미 모양의 문신이 까맣게 새겨져 있었다. 블라디미르 호텔에서 악연을 맺었던 하스볼라토프 홍의 얼굴이 미끄러져 갔다. 그의 팔에 새겨졌던 문신이 선명하게 뇌리에 다가섰다. 중국계 마피아들이었다. 그들은 묵계라도 한 듯 내 배와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말로만 들었던 그 중국계 마피아. 러시아 인들에게 조차 신뢰를 잃고 야비하게 살아가는 기생충들. 그들이 내 눈 앞에서 나를 짓이기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만난 나는 나무토막처럼 매를 맡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복통이라도 난 것처럼 도르르 허리를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이 내 머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귀가 그들의 발굽에 짓밟혀 찢어졌고 입술이 갈기갈기 터졌다. 코와 입에서는 연신 선혈이 흘러내렸다.

나는 머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수차례 뒹굴었다. 통증도 느끼지 못할 정도의 큰 충격이 팔과 다리에 계속됐다. 발굽이 내 등에 내려 꽂혔고 이어 둔탁한 운동화가 내 볼을 걷어찼다.

나는 땀과 피로 얼룩진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또 다시 한 사내가 나를 일으켜 세워 양어깨를 잡아 올렸다. 그러자 다른 사내가 흐느적거리는 나를 향해 불끈 쥔 주먹을 날렸다. 나는 내장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통증이 온몸을 굳어버리게 했다. 거센 주먹이 내 심장까지 파고 든 뒤 속을 휘감는 것 같았다. 앞이 희미하게 흐려왔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눈알을 가려 온통 세상이 붉게 보였다.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석탄 더미속의 쇳조각이었다. 온몸이 끊어질듯 아려 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리어 그들은 내가 괴로워할수록 발가벗은 탐욕과 노골적인 본능을 드러내며 나를 마구 짓밟았다. 그들은 마치 회오리바람의 한 가운데에 나를 몰아넣을 기세였다.

하지만 기필코 그 바람의 한가운데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이를 빠드득 깨물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질긴 내 삶이 이내 새끼줄 같이 꼬이며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 같았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과 마음이 그들의 탐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 빨려든 내 육신이 산산이 부서져 갔다.

채린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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