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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소음·흑색소음과 인간생활
백색소음·흑색소음과 인간생활
  • 라창호
  • 승인 2018.08.08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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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먼 하늘 속에서 꾸르르릉 꾸르르릉 천둥이 울면서 쏴와아­쏴와아­ 비 내리는 소리는 듣기에 참 좋은 소리다. 그 것이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빗소리라면 더욱 그렇다. 마치 콩을 볶듯 양철지붕에 시끄럽게 떨어지는 빗소리도 이내 귀에 익숙해진다.

이런 소음을 백색소음이라고 한다. 백색소음은 처음 들을 때는 시끄럽지만, 오래듣게 되면 익숙해지고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예를 들어 무더위를 피해 숲속 계곡을 찾아들면 계곡물소리를 듣게 되는데 마음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숲 바람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도 마찬가지다. 너럭바위에라도 누워 잠시 쉬노라면 이내 잠이 솔솔 오는데 이는 백색소음에 취했기 때문이다. 

처음 들을 때는 소음 같지만 들을수록 사람의 마음에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는 백색소음은 인공적인 소리가 아니라 자연의 소리가 많다. 빗소리, 파도소리, 폭포소리, 숲 바람소리, 산새 울음소리 같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자연의 소리를 음향기기나 스마트 폰으로 채록해 불면증 극복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백색소음을 머리맡에서 (아니면 이어폰을 끼고)듣게 되면 어느 덧 자연 속에 들어간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잠도 오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흑색소음은 처음부터 듣기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소리다. 오래 들을수록 불쾌감이 커지고 마음까지 불안해지는 듣기 나쁜 소리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와장창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되면 아주 귀에 거슬리고 마음이 불안해 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이런 소음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누구라도 식사를 하지 못한 채 나오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흑색소음이기 때문이다. 흑색소음은 자연적인 것보다 인위적인 것이 많다.

도로공사장의 굴착기 소리, 이·착륙하는 항공기 소음, 차량의 급브레이크 소리, 철거 현장의 굴삭기 소리, 시위 현장에서 마구 두드리는 타악기 소리 등등이 흑색소음이라 할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끊임없는 잔소리와 무턱대고 질책하는 소리도 흑색소음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거나 겪어 본 아파트 층간소음도 대표적인 흑색소음이다. 층간소음은 서로 간의 이해와 인내하고 조심하는 극복 노력이 없다면 이웃 간에 불화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아파트 높이는 2.4m이고 아래 위층을 가르는 면의 폭은 20cm 정도라고 한다. 높이 20cm에 불과한 철근 시멘트 판을 아래층에서는 천정으로 위층에서는 거실바닥이나 방바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거나 소란을 피우면 그 소리가 아래층에 크게 울려 소음이 된다.

같은 통로 6층에 사는 A씨가 이사를 간다며 며칠 전부터 집을 보러 다닌다고 집사람이 알려준다.(다음은 집사람이 A씨 부인한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씀.) “7층 사람이 이사를 가고,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를 왔는데, 아이들이 뛰고 달리며 떠드는 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제해줄 것을 여러 번 부탁했지만 마찬가지고 밤에 잠을 거의 못 잔다. 견디다 못한 남편이 이사를 간다며 집을 보러 다니자고 해서 그러고 있다.” 

A씨는 기관은 다르지만 같은 공직자로 정년을 마친 분인데 평소 말씀이 적고 점잖은 분이다. 그 고충이 미루어 짐작됐다. 하지만 A씨가 기왕에 이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이참에 가려는 것이라면 모를까 억지로 가려는 것이라면 한번쯤 더 위층과 타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본인도  수인(受忍)의 폭을 조금 더 넓히고 위층에 최소한 수면시간대만큼은 아이들을 자제시켜달라고 설득하면 타협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위층에서도 아이들이 좀 심하다 싶으면 잠시 집 가까이의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 놀게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심야시간대는 어떤 경우라도 아이들을 자제시키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교육시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위층에서는 “어린애들 뛰노는 것을 이해 못하고 기를 죽이려 한다.”는 원망을 하고 아래층에서는 “아이들이 아무리 귀엽다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뛰놀게 방치한다”고 나무란다면 타협은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경우는 서로를 역지사지해봐야 한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자연의 소리에 백색소음이 많은 것은 참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소리는 인간들이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를 못 오게 할 것인가, 파도소리를 멈출 것인가, 새 울음소리를 멈출 것인가, 계곡물 소리를 멈추게 할 것인가. 하늘을 가릴 수 없고, 바다를 퍼낼 수 없고, 새를 다 잡을 수 없고, 계곡을 다 막을 수도 없다. 이래서 인간이 자연의 백색소음에 순응해 살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색소음에 취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잠이 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자연의 소리가 흑색소음이라면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면서 살아갈 방도가 있을까?

반면에 흑색소음은 인위적인 것이라서 사람하기에 따라 소음의 발생을 줄일 수도 있고, 소음의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또 소음발생 시기를 예측해 사전에 대처할 수도 있다. 이 같이 흑색소음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낮에 하는 것을 밤에는 자제하면 되고, 큰 소리는 음량을 줄이면 되고, 불필요한 소음은 각자가 알아서 내지 않으면 된다. 불필요한 잔소리나 질책은 하지 않으면 된다. 마른 명태대가리를 두드릴지라도, 마늘을 찧을지라도, 뒷 베란다에 나가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이웃을 위한 배려이고 함께 살아가려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작은 소음이라도 줄이면 이웃이 함께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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