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지도
다낭 지도

 최근 베트남의 다낭(沱灢 베트남어: Đà Nẵng)이 동남아 최고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약1,650km나 되는 베트남에서 하노이 남쪽 763km, 호찌민에서 북쪽 947km 지점에 있는 도시 다낭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족의 도읍지였다. 다낭은 참어(Cham語)로 ‘Da Nak’라고 부른 것이 기원인데, 그것은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오늘날 다낭은 수도 하노이, 호찌민(사이공), 하이퐁 다음 인구 100만 명의 베트남 4대 도시인데, 남쪽 약30km 떨어진 호이안(會安; 파이포)과 북쪽 약108km 떨어진 후에(Hue; 順化)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점이 다낭 여행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호이안은 16세기 중엽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페르시아 만을 거쳐 중국 명(明)으로 연결되는 무역항로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항구였으며,  이들 무역상들의 집단거주지까지 형성되기도 했다. 한편, 후에는 1635년부터 1802년 하노이로 천도할 때까지 원조(阮朝; 응우엔)의 수도로서 고대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베트남 왕조에 대하여는 2018.07.30. 하노이 바딘광장 참조). 

다낭시청사
다낭시청사

다낭은 하노이, 호치민(사이공) 국제공항에 이은 베트남 제3의 국제공항이 있어서 인천과 김해에서 정기편이 운행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대구공항에서도 정기편이 운행될 정도로 한국인 여행객이 폭주하고 있다. 2018년 5월 다낭 관광청 발표에 의하면 2016년 한국인관광객은 45만 명이었다가 2107년 91만6천명으로 늘었으며, 2018년 5월 말 현재 54만 명이 다낭을 찾아서 외국인관광객 중 70%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다낭까지는 비행기로 약 4시간 40분 걸리며, 시차는 서울보다 2시간 늦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선교차 베트남에 입국한 프랑스 신부 2명이 체포되자 이들을 구출한다는 구실로 베트남을 침략하여 1858년 9월 투란(Tourane)전투에서 승리 후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고 약80년 동안 통치하여 다낭 곳곳에 프랑스의 유물과 유적이 많다.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프랑스는 2차 대전 후에도 재차 베트남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하였으나,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인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한 뒤에야 물러났다. 이후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 관할지였던 다낭은 미군이 점령 후 공군기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미 해군기지가 있던 부두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켰다.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하였으나,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한자가 폐기되고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Romanization)가 추진되어서 지금은 로마자 표기가 공용어가 되었다. 화폐의 단위는 동이라 하고, 우리 환율과는 약1/20이지만, 미 달러가 면세점이 아닌 가게나 음식점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우리 돈을 받는 가게도 많다.   

한강과 용다리
한강과 용다리

다낭은 내륙에서 남중국해로 흘러나가는 강 하구에 있어서 강폭도 넓고 강물의 수량도 매우 많은데, 한강(Song Han River)을 사이로 하여 동쪽의 손짜 반도와 서쪽의 시가지로 나뉜다. 한강에는 송한다리, 용다리, 진티리다리 등 5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 4개는 프랑스와 중국에서 건설한 것이고 베트남에서 건설한 유일한 다리가 용다리다. 용다리는 예부터 용을 신성시한 베트남인들이 난간 위에 긴 꼬리를 드리운 길이 660m의 용 모양을 조각하여 다낭의 상징물이 되었다.

용다리
용다리

해가 지면 다낭 시내는 온통 LED 조명으로 화려하게 변하는데, 용다리의 용도 Led 조명으로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매 주말 밤9시부터 용의 몸체가 황금색에서 푸른색 등으로 변신하면서 용의 입에서 뿜어내는 불 쇼가 볼만하지만, 가스로 뿜어내는데 불 쇼의 비용이 많이 든다고 불은 5회 정도만 뿜어내고, 물은 오랫동안 뿜어낸다.

약20분가량 진행되는 불 쇼는 굳이 유람선을 타지 않더라도 다낭 신시가지 쪽 용다리 끝인 하트모양의 포인트가 불 쇼를 즐기기에 좋은 지점이다. 다낭의 로보텔 호텔(NOVOTEL) 길 건너에 있는 선착장에서는 주야로 유람선을 운행하는데, 용다리를 반환점으로 약1시간가량 투어하면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유람선요금은 1인당 10만동(한화 약4,700원)이다. 
 

마케비치 전경(다낭 관광청)
마케비치 전경(다낭 관광청)
미캐해변
미캐해변

 다낭은 손짜 반도의 맨 위의 미케 비치(Mỹ Khê; 美溪) 부터 남쪽 호이안 방향으로 박미안 비치(Bac My An)~ 논누억 비치까지 약30㎞나 되는 긴 해변이 자랑인데,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다낭을 ‘세계 6대 해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렇지만, 동지중해의 해변은 일 년 내내 편동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매우 강해서 필리핀의 세부, 보라카이, 태국의 푸껫, 파타야 같은 평화로운 바다와 전혀 비교할 수 없다.

시내에서 약5㎞ 떨어진 미케 비치는  1970년대 월남전 당시 미군 휴양소로 개발된 베트남에서도 가장 유명한 해변 중 하나로서  차이나 비치(China Beach)라고도 한다. 하지만, 미케 해변은 거센 파도로 윈드 서핑이나 모터보트를 즐기는 서양인들에게 알맞을지 몰라도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시아인들은 대부분 비치파라솔이나 백사장에서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백사장 바로 옆에 도로가 있어서 접근성이 좋아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는 편리함은 있는데, 마치 우리의 서해안 대천해수욕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미케비치에서 본 링엄사
미케비치에서 본 링엄사

 또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7㎞ 떨어진 박미안 비치는 4㎞에 이르는 해안과 백사장 월남전까지는 개발되지 않았으나, 최근 5성급 푸라마 리조트가 세워지는 등 국제적인 휴양지로 알려졌다. 또, 호이안으로 가는 중간인 오행산 옆의 논누억 비치도 미케 비치와 함께 월남전 동안 미군의 휴양지로 이용되던 해변으로서 멋진 리조트와 서핑, 위락시설이 있고, 근래에는 다낭 남동부의 냐짱(Nha Trang; 芽莊)을 많이 찾기도 한다. 바나힐즈는 해발 1487m의 바나 봉까지 운행되는 케이블 길이가 5km나 된다. 

 

다낭 한시장
다낭 한시장
한시장 내부
한시장 내부

그런데 다낭 시내에는 도로와 인도가 분리되어 있고, 교통신호등도 있지만 교통신호를 제대로 지키는 차량이나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법천지다. 도로는 중앙선이 있는데도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가 서로 엉켜서 주차장인지 시장거리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인도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노상 주점이나 음식점이 차지하고 있어서 보행자는 위험하게 차도로 걸어 다니는 실정이다. 비교적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우리 눈에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일상이다.

또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지만, 승용차는 일제 토요다가 압도적으로 많고, 현대차와 기아차도 조금씩 보였다. 오토바이는 일제가 거의 대부분이고, 한국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와 달리 산타페 같은 7~9인승 레저차량을 택시로 많이 운행하고 있어서 가족이나 소규모 단체여행에 매우 편리했다. 우리도 이런 패밀리 택시 영업을 이용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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