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은 노점상들이 즐비한 시장골목이었다. 그곳에는 시장사람들이 허리높이의 회색빛 판자 위에 딸기와 야채, 거센 불에 구어 낸 빵, 음료수 등 식료품을 올려놓고 팔리기를 기다렸다. 잡동사니며 세간들이 거리에 너절하게 널려 있었다.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 쓴 노파와 체중을 거북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뚱보 아주머니. 중년의 노동자, 때가 꼬질꼬질 한 시장 아이들, 흥정에 지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몇 발자국을 더 달리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온 몸의 땀구멍이 활짝 열린 채 묽은 땀을 토해냈다. 바지가 땀에 젖어 다리에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속옷은 이미 젖은 마분지 같았다. 머리는 비를 맞은 듯 축축 하게 젖었다. 호흡을 고르며 상인들이 늘어선 시장을 물고기같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들어갔다.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다.

노점상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은 흥청거리거나 붐비지 않았지만 달아난 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역시 숨이 벅차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숨을 헉헉거리며 골목을 지나고 있을 것 분명했다.

내 눈은 먹이를 찾는 이리만큼이나 빛났다. 그를 찾아야만 채린에 대한 궁금증이 벗겨질 것 같았다. 그가 채린의 실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달아날 이유가 없었다. 또 채린의 기숙사에 버려졌던 말보르 담배꽁초는 무엇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확실한 단서였다. 그는 그담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우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그의 담배였다. 그가 먼저 채린을 유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중국계 마피아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사는 쥐새끼 같은 놈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야마모토가 몸을 숨길만 한 곳을 뒤지며 시장 골목 속으로 녹아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불길처럼 일었다. 그를 놓친다면 채린을 찾는 일이 더욱 힘들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조여 왔다.

그 때였다. 족히 80여 미터는 더 떨어진 거리에서 골목길 언저리를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도 지친 듯이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흔들리는 군상들 사이로 다소 조급하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선명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에 힘이 가해지며 맥동이 세차게 느껴졌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덥수룩한 머리에 두터운 청색 파카를 걸친 노점상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가 위기를 벗어났다는 판단하고 경계를 늦추면 방심하는 사이에 그를 따라 잡을 계획이었다.

나는 그가 길모퉁이를 완전히 돌아가고 난 뒤 몸을 일으켜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는 나를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했는지 갈수록 걸음을 늦췄다.

내가 골목 모퉁이쯤에 다다랐을 때 그는 넓은 도로를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그는 막 쏟아져 나온 공장 노동자들과 몸을 섞으며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일정한 간격을 둔 채 그를 따랐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자 그는 같이 길을 건너던 무리를 앞질러 갔다. 횡단보도를 지난 뒤 다시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자신을 쫓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내가 보이지 않자 다소 느긋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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