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따라가며 담배꽁초를 주워들었다. 말보르 담배였다. 필터에는 눅눅한 침과 질겅질겅 씹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채린의 침대 밑에서 발견했던 그 담배꽁초 그대로였다. 그자였다. 채린을 어디론 가로 데려 갔을지도 모를 놈.

나는 그가 달아나는 쪽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뒤쫓기 시작했다.

30여 미터쯤 앞서가는 그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금방 손끝에 잡힐 것 같았다. 나는 다리에 힘을 더하며 그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는 내가 뒤쫓는 것을 힐끗 돌아본 뒤 건물의 구석진 곳으로 휙 돌았다. 나는 그를 놓칠세라 이를 앙다물고 뛰었다. 그 사내는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나를 따돌리기 위해 야바위꾼 같이 기민하게 달아났다. 숲이 우거진 가로 공원을 지나고 또 다른 도로를 뛰어 넘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만을 보며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쫓았다. 다급해진 사내는 달려오는 화물차의 앞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질러 우수리스크 중심가로 향하는 큰 도로를 건너뛰었다. 그러자 달리던 화물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차를 몰고 가던 사내는 상기된 모습으로 차창 문을 연 뒤 달아나는 그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그가 화물차에 치어 즉사하는 줄 알았다. 그를 뒤쫓으면서 순간 눈을 질끈 감았었다.

나는 화물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뒤를 돌아 그를 다시 쫓기 시작했다. 30여 미터쯤 떨어졌던 그 자와의 간격이 어느새 50여 미터로 벌어져 있었다.

나는 사내를 뒤쫓으면서 왜 그가 나를 본 뒤 달아나는 지에 대해 계속 반문했다. 골든 드레곤에서 나와 마주쳤다고 해도 모른 채 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또 그의 담배가 채린의 기숙사에서 발견된 것과 같을 지라도 그것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움찔 놀랐으며 급히 달아나는 것인지 그점이 수상했다.

그 때였다. 앞서 달아나던 사내가 상가 건물이 밀집된 골목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내 쪽으로 고개를 힐끔 돌렸다. 그의 얼굴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음영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극동대 기숙사 관리대장에 붙어있던 일본인 유학생 야마모토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쳤다.

짙게 돋은 눈썹과 좁다란 미간, 아래로 쪽 뻗은 콧날, 뾰족한 턱, 음흉할 만큼 어둡게 가라앉은 눈자위…….

야마모토였다.

내가 그를 정면에서 본 뒤 쉽게 알아보지 못한 것은 관리대장에 붙어있던 사진 때문이었다. 그 사진은 색이 다소 바래있었으며 헤어스타일도 지금과 달랐다. 또 그 사진은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음영만을 강조한 스냅 사진이었기에 그것만으로 그의 모습을 연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신상명세서를 살펴보면서도 방학과 동시에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기록됐기 때문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내 눈앞에 달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고 오직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듯이 숨이 차올랐다. 거친 호흡을 연신 토했다. 그것만으로는 답답한 가슴을 삭힐 수 없었다. 턱에 걸리는 호흡을 억누르며 그가 달아난 골목길을 향해 내달렸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아지트. 아니면 단순히 나를 따돌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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