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전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드물다. 다른 지역과 경쟁만 붙으면 진다. 시는 지난주에도 큰 게임에서 패했다.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1150억 짜리 스마트시티(실증도시) 연구개발 사업에서 물을 먹었다. 기존 도시를 스마트시티화(化) 하기 위한 연구사업이다. 이 게임의 승자는 대구시(기초단체는 시흥시)였다. 경기 종목이 과학도시 대전에 유리한 스마트시티 관련 분야인 데도 또 졌다.

‘과학 경쟁’에도 밀리는 과학도시... 대전, 스마트시티 국비사업 잇단 패배

대전시는 ‘스마트시티’분야 전담 부서를 전국 자친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면서 4차산업 선도 도시를 외쳤다. 이번 경쟁에선 이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ETRI 연구진까지 참여시켰으나 허사였다. 지난 1월에는 1조원대의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을 부산과 세종시에 빼앗겼다. 이 사업은 지자체 공모가 아니라 정부가 자체 선정하는 방식이었으나 30~40개 지역을 대상으로 심사한 뒤 결정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도시 간 경쟁이었다. 

마치 과학분야 콘테스트에서 대덕특구라는 전국 최고의 ‘과학영재’를 둔 학교에서 자꾸 탈락하는 꼴이다. 하지만 대전시의 줄기찬 탈락과 패배의 역사를 상기해본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전은 지는 데 이골난 도시다. 역대 시장을 돌이켜보면 국비사업에서 탈락하거나 패배한 기억들만 줄줄이 남아있다. 로봇랜드는 경남에 빼앗기고(박성효), 과학비즈니스 벨트는 반쪽으로 축소되면서(염홍철) 대전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자칭 철도도시라면서도 철도박물관 유치에서도 물을 먹는다(권선택).

대전이 이기는 경우도 가끔 있다. 시는 최근 어린이재활병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알면 오히려 분통 터질 시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색이 정부 공모사업인데 사업비의 70%를 대전시가 대는 조건이다. 이런 사업은 시범적 복지사업의 성격이 큰 만큼 정부가 일체의 비용을 대야 맞는데 완전히 거꾸로다. 정부지원금은 78억에 불과하다. 대전시가 내 돈 들여 하는 사업에, ‘국비사업’ 간판만 걸어놓는 사업이다. 이런 조건으로는 사업을 가져갈 곳은 대전 말고는 없을 것이다.

옛적 ‘대덕연구단지’가 대전에 들어서고 ‘행정도시’가 충청권에 자리잡은 것은 지역간 경쟁에서 이긴 결과라기보다는 정권 차원의 시혜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과학벨트가 대전에 오게 된 건 행정수도 논란에서 얻은 어부지리였고 그나마 후임 정권에서 반쪽을 낸 것으로, 대전이 이겨서 가져온 사업은 아니다. 대전은 경쟁만 붙으면 지고 탈락하는 도시다. 호남선 철도를 빼앗기며 100년 철도도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는 도시 대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역 정치력 문제냐 공무원 경쟁력 문제냐

필자는 그 원인이 대전의 정치적 위상과 관련성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대전시장이나 지역 국회의원 등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번 스마트시티 실증도시 경쟁에선 서류심사에서 통과하고 종합심사에서 졌다고 하니 정치적 원인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대전이 늘 지는 책임을 ‘정치’에만 돌리기 어려운 정황도 있다. 국비사업 심사를 자주 해본 한 지방대 교수는 “경쟁이 붙었을 때 대전시가 제출하는 자료를 보면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전시장에 출마했던 바른미래당의 남충희 후보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도 각종 공모사업에 심사를 맡은 경험이 있다. 그는 “공모 경쟁에서 승패의 80%는 기획력과 창의력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승패의 원인을 정치가 아니라 실력에서 찾아서는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전시 공무원들의 능력과 성실성에 관한 문제가 된다. 1989년 보통시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분리되어 도와 동급의 광역시가 되었지만, 도 공무원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대전시 공무원들을 한 등급 아래로 보았다. 기자들도 대전시의 일처리가 미숙할 때마다 충남도와 비교하곤 했다. 광역시 승격 30년이나 돼 가는 지금까지 그렇다고 보긴 어려우나, ‘지는 도시 대전’의 책임에서 시공무원들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공무원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대전시라는 조직의 분위기가 문제라고 본다. 대전시는 유독 선거 때마다 시장이 바뀌고 그에 따라 정책도 뒤틀리고 겉돌았다. 공무원들은 성실하게 실력을 쌓기보다 처신과 요령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런 조직에선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팽배하게 돼 있다. 얼마 전까지 시청 안팎에선 “염홍철 시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지금까지 대전시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이렇게 따지면 ‘지는 도시 대전’의 근본 원인은 다시 ‘시장의 문제’로 돌아간다. 조직을 죽이고 살리고, 일 잘하는 공무원을 만들고 못 만들고는 그 조직의 장(長)한테 달렸다. 이번 국비사업 탈락은 신임 허 시장의 책임은 아니다. 대신 허 시장은 이런 조직을 바꿔야 할 책무가 있다. 잘못된 조직문화와 분위기를 바꾸는 건 조직의 수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허 시장이 이런 일을 잘해내지는 다음 경쟁의 결과에서 알 수 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