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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62]
탈북자 [62]
  • 이광희
  • 승인 2018.07.27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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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줄곧 그런 즐거운 생각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섬광처럼 스치면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곤 했다. 그런 생각들은 대체로 채린이 나를 보고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지나 않을까. 또 그녀가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채린은 내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며, 연인이고, 애인이었다. 7년여의 삶을 그녀와 나누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떨쳐 본 적이 없었다. 도리어 그런 생각은 돌이끼 낀 부도같이 갈수록 빛깔을 더하며 우리 사이를 끈끈하게 묶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움이 오늘에 와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중국계 마피아들의 출현이 나와 채린의 사이를 긴 강으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었다.

승용차는 포로를 미끄러지듯 달렸지만 차가 스피드를 더할수록 가슴은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눈에 뜨일 만큼 한가해 보였다.

색 바랜 아스팔트 도로와 텅 빈 집들. 그사이를 메우고 있는 가로공원, 행인이 보이지 않는 도로, 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가로공원은 나무가 아무렇게나 자랐고, 이름 모를 풀들이 어지럽게 바람에 흔들렸다. 우수리스크는 죽음의 도시같이 조용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간간이 우리를 앞지르는 화물차들만이 널찍한 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따냐는 길모퉁이 주유소에 들려 승용차에 휘발유를 주입시켰다. 길거리에서 만나지 못했던 차들이 그곳에 멍청한 모습으로 몰려 있었다.

나는 그곳 종업원에게 다가가 라는 주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로 모른다고 말한 뒤 멀리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사내를 불렀다.

주유소는 말이 주유소지 낡은 주유기 2대를 길거리에 세워 놓고 지나는 차량을 유혹하는 곳에 불과했다. 빈둥거리던 사내는 내게 다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차이나타운이 있으며 그곳에 라는 술집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곳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그곳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대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미화 5달러짜리 지폐를 집어주었다. 그는 신기한 듯 기름 묻은 손으로 지폐를 쳐들고 유심히 살폈다. 그는 내게 호의를 보이려고 애썼다. ‘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많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그곳에는 아름다운 동양계 아가씨들이 술시중을 들며 러시안은 그리 많지 않다고도 일러주었다.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차이나타운은 주유소에서 5분쯤의 거리에 있으며 큰길을 따라가다 우회전을 한 다음 3백 미터 정도 들어가면 그곳에 라는 주점 간판이 큼지막하게 보일 것 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따냐가 천천히 승용차를 모는 동안 권총에 실탄을 장전했다. 그녀는 내가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탐탁찮은 눈치였다. 실탄을 한 발 한 발 장전시킬 때마다 그녀는 소름이 끼치는 듯 움찔거렸다.

따냐가 권총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나와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할 경우 그녀는 꼼짝 없이 공범이 되는 셈이었다. 또 총기를 지니고 다니다 적발이 되도 그런 곤혹을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내게 위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권총을 지니고 난 뒤로는 줄곧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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