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직자의 명함과 휴대전화 번호
선출직 공직자의 명함과 휴대전화 번호
  • 가기천
  • 승인 2018.07.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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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천의 확대경] 수필가·전 충남도 서산부시장

가기천 수필가·전 충남도 서산부시장

“구청장이 건넨 명함에는 본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보통 단체장 명함에 비서실 번호만 적혀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 구청장은 ‘구민이면 누구나 제게 문자를 보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실린 서울시 S구 J구청장 인터뷰기사의 일부다. 그 구청장은 민방위 교육장에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민원을 듣고, 본인 휴대전화 번호도 서슴없이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최근 민선자치단체장으로부터 명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휴대전화번호가 적혀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보통 단체장 명함에 비서실 전화번호만 적혀있는 것과는 달랐다’는 기사를 보면 휴대전화 번호를 쓰는 것은 드문 사례라고 짐작한다.

 지방선거에 나서면서 후보자나 당선자 할 것 없이 모두 소통을 강조하고 ‘낮은 자세로 시민의 소리를 경청하겠다.’고 약속한다. 소통하고 경청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전화는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 다음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페이스 북이나 블로그, 이 메일 등 IT기술을 활용한 의사전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대량전달 기능까지 있는데다 저장성까지 있어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글자를 매개로한 소통이라는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접속하여야 비로소 알 수 있으며 대체로 일방향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일대 일 방식이 아니라서 육성으로 의사를 주고받는 때의 친근감에다 억양과 음색을 헤아리며 대화하는 전화보다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휴대전화 번호 공개 안하는 까닭
 
최근 휴대폰을 곁에 두고 있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증인 ‘노모포비아’현상까지 있다고 할 만큼 일상에서 휴대폰을 떼어 놓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일과 후 업무상의 전화를 받지 않을 권리’라는 말까지 나오듯이 때를 가리지 않고 휴대폰을 통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민선단체장이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귀찮거나 거북한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럴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민원성 전화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도 어렵고, 복잡한 업무에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결정권자로서의 책임성 등으로 볼 때 직접 응대하는 것보다는 공식조직을 통한 업무처리가 합당하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오래 전, 수도 물이 나오지 않는 날 아침에 어느 주민이 군수 관사로 전화해서 “세수했느냐? 식사는 했느냐?”고 묻고 “했다”는 군수의 대답에 화풀이를 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내려 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관계 공무원에게 연락하여 조치하도록 한 다음 출근한 뒤 봉변을 당한 불쾌한 감정까지 섞어 부산을 떠니 하루 종일 사무실 분위기가 냉랭했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휴일이나 야간에 당직을 하다보면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대뜸 기관장 관사나 휴대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용무를 말씀해주시면 알아서 처리하거나 기관장에게 보고하고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려 해도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사람에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낭패스러운 처지가 하필 그날 당직을 서는 직원의 비애였다.

아무리 한 지역을 책임 맡고 있다고 해도 일과 후나 한 밤중에 불쾌한 전화를 받고나서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질책을 하는 기관장이 있다고 한들 마냥 야속하다고는 할 수 없다. 기관장도 사람이고 자기 시간도 가져야 하며 그러기에 당직제도가 있는 것인데, 긴급힌 사항이 아닌 바에야 통상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

공인의 전화번호는 사생활 문제인가?

 이와는 다른 경우를 들어 본다. 어느 기관의 아는 간부와 통화를 하려고 비서실에 전화했는데, 마침 출장 중이라고 하기에 “그럼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이 메일을 보내겠다”며 나름 이해하리라고 여길 만큼 신분을 자세하게 밝히고 그 간부와 인연을 말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번호나 이 메일 아이 디를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끝내 알려주지 않아 포기하고 만 적이 있다. 

아무리 친분을 강조했다 하더라도 전화번호를 모르거나 옛 전화번호만 가지고 있다면 가까운 사이가 아닐 것이라고 여겼거나 부담을 주려는 것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도 있으니, 상사를 ‘잘 모시려는’ 비서직원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탓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공인에게 전화번호가 사생활이고 비밀인지는 의문이었다. 요즘은 공용전화와 개인전화를 따로 가지고 있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선출직 공직자가 명함에 휴대전화번호를 적지 않는 것은 차원이 다른 사항이다. 서울시 J구청장의 명함에 당당하게 휴대전화번호를 적은 자세가 돋보이고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자치단체장의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가 없다면 소통과 경청, 낮은 자세로의 대화를 강조하던 마음이 벌써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기우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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