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28] ‘기무사 문건’ 파문과 부국강병의 길

‘탄핵 기각됐으면 난 총 맞고 죽을 뻔 한 거였네’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가 만들었다는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당시 탄핵 기각 결정이 내려지면 계엄령(戒嚴令)이나 위수령(衛戍令) 발동을 검토했다는 기무사 문건이 일파만파 파문을 낳고 있습니다.

계엄령이나 위수령 모두 군을 동원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요. 계엄령은 국회 동의를 받는 대신, 위수령은 국회 동의 없이 지자체장이나 경찰서장 요청만으로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중 위수령은 시민들의 민주적 집회와 시위를 탄압하는 데 이용, 헌법에 규정된 국민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에 따라 폐지령안 입법예고가 끝나는 다음 달 13일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여당과 진보진영은 이번 기무사 문건에 나온 계엄령이나 위수령 발동 계획은 ‘내란 음모’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탱크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동원까지 고려해 작성된 ‘실행 계획’이라는 주장입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충남 천안을)은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국민은 지난겨울 꺼지지 않는 평화의 촛불로 세계에 깊은 울림을 준 바 있다. 그러나 기무사는 이러한 촛불국민을 상대로 총을 겨누는 것을 검토했다니 37년 전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과 보수 지지층은 기무사의 통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반론입니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계엄령과 위수령 관련 규정을 ‘단순 검토’하는 수준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지난 8일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은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탄핵 기각은 혁명’,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은 내란’이라 주장하며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탄핵결정 후 화염병 투척, 경찰청 방화, 무기 탈취 등 심각한 치안불안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를 가정해 군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다각적으로 검토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또 “군대는 그야말로 비상사태를 대비한 조직이다. 비상사태 시 국가 안위를 위해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군사 보안을 책임지는 기무사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군은 국가적 비상사태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방첩과 보안 업무에 충실해야 할 기무사가 왜 합참의 영역인 계엄령과 위수령을 검토해 공연한 오해를 샀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군은 정권 찬탈(簒奪)의 수단 내지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면서 국민적 신뢰도가 높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와 전두환의 12.12사태, 앞서 박완주 의원이 언급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당시 군은 국민들을 무력(武力)으로 진압하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민주묘지에서 진행된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이번 기무사 문건이 어떤 용도로 작성되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 다만, 무력으로 그늘진 ‘군사독재’ 터널을 빠져나와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21세기 군이 여전히 정권과 권력의 수단으로 ‘검토’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국방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군인의 정치개입을 방지하는 특별법을 만든다니 다행입니다.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난 달 25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의 일상화', 즉 '민(民)의 자치'를 통해 정치를 구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교수는 “촛불의 일상화가 최고 과제다. 이번 촛불 혁명에서 주목해볼 만한 부분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계몽주의가 끝났다는 점이다. 집단적 '우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조직화한 집합적 '우리'로 진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엄령 문건’ 보고를 받고도 몇달 동안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충남 논산 출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모쪼록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 도중 ‘특별지시’한 이번 문건 논란이 공정한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하는 동시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총체적 군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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