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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56]
탈북자 [56]
  • 이광희
  • 승인 2018.07.1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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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알렉세이의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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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나는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부스스 게으르게 눈을 뜨고 몸을 돌아 뉘였다. 하지만 벨소리는 귀찮게 계속해서 울렸다. 베개로 귀를 막았지만 벨소리는 멎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잠이 설깬 탓 인지 눈알이 무거웠다.

여보세요.”

빅또르 김입니다.”

이른 새벽에 웬일이십니까?”

지난번에 내게 부탁하신 물건 구입 문제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잘 해결될 것 같습니다. 오늘 알렉세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테니까 그를 만나 보세요. 그 분에게 권총 구입문제를 당부해 놓았으니까. 곧바로 전화가 갈 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전화가 끊긴 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을 것 같은 냉기가 돌았다. 마른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툭툭 털며 욕실을 나섰다.

그 때 다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무뚝뚝하게 물건을 팔겠다는 말만을 남긴 뒤 약속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전 10시 극동군 사령부 앞 부두.”

나는 그가 전화로 일러준 약속 장소를 되뇌며 따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냐는 내가 부산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온 즉시 극동군 사령부가 빤히 보이는 부두가로 나갔다. 그곳은 유달리 한가했다. 개를 몰고 지나는 늙은 노파와 노동자 풍의 사내들, 그리고 약간의 노점상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도블록이 깔린 광장에는 틈새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짓밟히며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진 틈마다 돋아난 풀들은 꼬질꼬질 살면서도 광장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선착장에 화물선이 도착하자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들이 모래톱에서 갓 깨어난 새끼 거북이같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의 직장을 향하느라 부산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한 차례 지난 뒤의 광장은 운동회가 끝난 직후의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황량함마저 감돌았다.

나는 따냐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항이란 동판이 붙은 광장 가장자리를 서성이며 알렉세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한 사내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희고 검은 수염이 잔뜩 뒤엉킨 사내는 각진 얼굴이 고집스럽게 보였다. 그는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으며 별로 을씨년스러울 것 없는 날씨에도 검은 색 가죽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옷깃을 세운 사이로 깊이 패인 엷은 갈색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나와 눈빛이 마주치자 오랫동안 사귀어온 사람같이 싱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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