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지도

 

이탈리아는 로마를 중심으로 해서 남부와 북부로 나누는데, 나폴리․소렌토 등 남부는 주로 농업지대이고, 피렌체, 밀라노(Milano), 피사 등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이것은 로마가 오랫동안 유럽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오는 동안 북부는 유럽 각지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서 일찍부터 교통로와 숙박업이 발달한 영향이다. 특히 로마와 밀라노 중간에 있는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서 중세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고, 프랑스 국경과 가까운 밀라노는 상공업이 발달헤서 주민들의 생활수준에도 큰 차이가 있다. 북부지역 주민들은 남부지역 주민을 깔보는 경향이 있고, 남부 주민들은 우리의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직장을 찾아 몰려가듯 밀라노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밀라노 지도

 역사적으로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로마황제는 제국을 나누면서 밀라노를 황궁소재지이자 행정중심지로 삼았는데, 그 후 콘스탄티누스 대제도 이곳을 '이탈리아의 대리자'로 선언했다. 그러나 5세기에 훈족 아틸라의 침략을 받고 파괴 되었던 밀라노는 중세이래 로마교황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지 1796년 나폴레옹 군이 진격하자 밀라노 시민들은 적국이자 이민족인 프랑스군을 열렬히 환영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1805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삼은 밀라노에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 후 1814년 나폴레옹 제국이 붕괴되자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밀라노는 1859년 마젠타 전투 승리로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와 나폴레옹 3세의 연합군의 승리로 이탈리아 전국을 통일하면서 이탈리아의 수도가 될 것 같았지만, 현재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밀라노대성당 정면
밀라노대성당 정면

원래의 밀라노는 두오모 성당 남서쪽에 직사각형으로 형성되었지만, 1162년 도시가 파괴된 후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지금과 같은 타원형으로 변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로 통하는 광범위한 도로·철도·통신망을 갖춘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경제 중심지로서 자동차, 비행기, 모터사이클, 전기기구, 철도설비, 기타 금속제품을 생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견본무역박람회가 매년 4월에 열린다. 또, ‘밀라노 패션쇼’라고 할 정도로 기성복과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전시회가 수시로 열려서 밀라노 국제공항은 인천에서도 매일 여객기가 취항하고 있다.

주민 140만 명이 사는 밀라노에서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에마뉘엘 갤러리, 스칼라 극장 정도인데,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밀라노의 중심지는 두오모 성당(Duomo Milan)이 있는 두오모 광장이다. 두오모 광장은 두오모 대성당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와 연결되어 있는데, 사실 두오모(Duomo)란 ‘반구형 지붕’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이다. 특히 11세기부터 200년 동안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벌인 십자군 전쟁이후 유럽에 전파된 이슬람 양식으로서 이후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을 의미하여 오랫동안 도시국가였던 이탈리아에는 주요도시마다 ‘두오모 성당’이 있지만, 그중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밀라노 두오모 성당이 가장 유명하다(두오모 성당에 대하여는 2018.05.14. 피렌체 두오모성당 참조).

대성당 내부
대성당 내부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1386년 건축을 시작하여 장장 5세기에 걸쳐 완성된 높이 157m, 너비 92m에 135개의 첨탑의 고딕 양식으로서 바티칸의 베드로성당, 런던의 성폴(바울)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과 함께 유럽에서 3번째 큰 대성당으로서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뾰쭉한 고딕식이라는 점 이외에 하얀 대리석을 섬세하게 조각한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두오모 광장에는 186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뉘엘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나폴레옹 유럽 정복 이후 이탈리아인들에게 민족주의 의식이 생겨서 마치니의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오스트리아의 탄압으로 실패했지만, 다시 사르디니아의 주도로 통일운동이 전개되어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아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통일했다. 한편, 남부에서는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점령하여 에마뉘엘 2세에게 바침으로서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었다.
 

이탈리아는 통일을 기념하여 두오모 대성당과 스칼라 극장 사이에 1865년부터 1877년까지 13년 동안 비토리오 임마누엘 2세 기마상을 세우고, 그 옆에는 ‘비토리오 에마뉘엘 2세 갤러리(Galleria)’를 세웠다. 쥬세퍼 멘고니가 설계로 1877년에 완성된 에마뉘엘 2세 갤러리는 전체적으로는 십자가형으로서 십자가가 만나는 중앙에 유리로 만든 커다란 둥근 천장이 있고, 회랑 바닥에는 4개의 동물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황소자리에는 황소의 생식기를 발뒤꿈치로 밟고 한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하는데, 아름다운 아치형 유리 천장의 아케이드는 오늘날 우리나라 시골 읍지역의 재래시장에도 설치될 만큼 흔한 유리로 만든 아치형 터널이지만 눈비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쇼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센터인 이곳을 ‘밀라노의 응접실’이라고도 하며, 유명 레스토랑, 카페, 명품관들이 고급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밀라노 패션의 중심지로서 매년 4월 밀라노 국제견본무역박람회도 이곳에서 열린다(비토리오 에마뉴엘에 관하여는 2018.3.19. 로마 베네치아 광장 참조).

에마뉘엘 2세 기마상
에마뉘엘 2세 기마상

 밀라노 광장에서 메르칸디 광장 쪽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무대인 스칼라 극장이 있다. 1776~1778년 신고전주의 건축의 선구자인 주세페 피에르 마리니가 세운 스카라 극장은 세계 최대의 극장 중 하나로서 모든 음악인들이 무대에 오르기를 꿈꾸는 무대이기도 하다.

다빈치 상
다빈치 상
스카라극장
스카라극장

 스카라극장 광장에는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하나인 예술가 레오나르드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 1519)의 동상이 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다빈치는 20살 되던 1472년 피렌체의 화가 길드에 가입했지만, 30살이 되던 1482년 밀라노 대공 루도비코의 초청으로 1499년 루도비코가 실각할 때까지 17년 동안 밀라노에서 그의 전속화가이자 건축 및 군사, 수력․기계 공학자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그린 그림은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Lady with an Ermine)을 비롯해 악사(Musician), 제단화로 그린 2점의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 수도원의 식당에 그린 최후의 만찬(1495~97),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에 있는 천장 장식화(1498) 등 단 6점에 불과했고 그는 건축과 공학에 집중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밀라노를 점령하자 피렌체로 돌아온 다빈치는 1503년 베키오 궁에 가로 17m× 세로 7m나 되는 ‘앙기아리 전투’의 그림을 3년 동안 그렸고, 이 무렵에 유명한 모나리자(Mona Lisa)도 그렸지만, 1506년 다시 밀라노로 갔다가 60세 되던 1513년 교황이 된 메디치가 레오 10세의 형제인 줄리아노의 추천으로 로마로 갔으나 브라만테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짓고 라파엘로가 교황의 새 저택에 그림 그리는 것만 지켜보다가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오랫동안 밀라노에서 활동했던 다빈치의 동상은 스카라 극장의 광장에  세웠는데, 동상 아래 네 명의 인물상은 그의 제자라고 한다(다빈치에 관하여는 2018.05.21.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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