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 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손창규 대전대 한의학과 교수.

밤낮으로 바쁜 업무에 시달리는 40대의 환자가 방문하였다. 심한 피로감이 가시질 않으며 뒷목은 당기듯이 뻣뻣하고 두통과 어지러움, 눈의 충혈 및 기억력과 집중력 감소를 호소하였다. 혈압은 비정상으로 높았으며 고지혈증과 중등도의 지방간이 있었다. 수면부족이 원인인가 싶어서 스스로 휴식과 수면시간을 연장해보아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평소 운영하는 사업이 잘 되어서 좋기는 하였지만, 최근엔 점차 의욕이 감소하고 건강이 걱정된다고도 하였다. 한의학적으로 이러한 환자의 경우를 전형적인 상성하허(上盛下虛)증 이라고 한다. 젊고 건강한 신체는 인체기운의 구조가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의 구조이다. 즉 하부의 기운이 강하고 건실하며 머리를 중심으로 한 윗부분은 가볍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한 형상이다. 이렇게 되면 허리와 복부 및 다리 쪽은 따듯하여서 순환이 잘되고 대소변과 생리적 기능이 황성해지고, 머리 쪽은 촉촉하고 서늘하여서 목과 머리 및 눈이 유연하고 맑아지게 된다. 이렇게 건강한 사람들은 피로한 일을 한 뒤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봄비를 맞은 새싹처럼 재충전되는 신체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및 과로에 시달리면 위의 환자처럼 무겁고 뜨거운 열기운이 목과 머리 및 눈을 중심으로 가득 찬 것과 상태인 상성하허(上盛下虛)증이 발생하기 쉽다. 간혹은 중고등학교 학생과 같이 젊은 나이에도 수면부족과 학업에 대한 노심초사 및 체력저하가 지속되면 유사한 증상이 발생한다. 머리 쪽에 이렇게 뜨거운 기운이 몰리면 아래쪽은 무기력하고 차가워져서 복통, 설사, 소화불량과 같은 소화기 증상과 대소변이 시원하지 못하고 결혼한 젊은이들은 성기능이 저하되기도 한다. 성인의 경우에는 등과 목에 담이 잘 걸리고 하체가 시린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신체기운의 운행이 역삼각형의 모양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상열하냉(上熱下冷)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근육피로를 중심으로 한 말초성피로가 아닌, 깊은 수면을 취하기 어렵거나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및 의욕저하나 약간의 우울감을 느끼는 중심성피로의 특성을 띈다.

최근 많은 분들이 한방약 중에서 공진단(拱辰丹)에 대해 질문하고 관심을 보이신다. 공진단은 ‘동의보감’에 수록되어있는 처방으로 사향(麝香)·녹용(鹿茸)·당귀(當歸)·산수유(山茱萸)의 4종 한약으로 구성되어있다. 사향과 녹용처럼 고가의 약물로 구성되어 극도로 허약해진 심한 질병의 회복에 귀하게 처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는 성인들이나 수면부족과 두뇌활동을 주로 하는 수험생을 중심으로 소비층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위의 예를 든 환자도 공진단 처방 후에 대부분의 증상이 소실되었으며, 혈압과 혈액검사상의 이상도 개선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공진단의 처방원리는 무엇일까? 바로 위에서 설명한 상성하허(上盛下虛)증과 상열하냉(上熱下冷)증을 치료하는 최적의 구성이라 하겠다. 약효를 보이는 중요한 약물이 사향과 녹용인데, 사향은 머리 쪽의 뜨거운 열을 제거하고 머리를 식혀주는 명약이며, 녹용은 나무의 뿌리를 강화시키듯이 신체의 하부를 보강하는 효능이 탁월한 한약이다. 특히 사향은 한약 중에서 가장 고가의 약물로, 과거에는 인사불성의 뇌질환 환자에게 사향가루를 콧구멍을 통해서 뇌로 들어가게 하는 치료로도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사육이 되지 않은 사향노루의 향기주머니의 액을 건조시킨 것으로, 사향노루는 전세계적으로 보호동물에 속하여 허가를 득하지 않고는 거래가 되지 않는다. 워낙 비싸고 귀하다고 알려지다 보니, 간혹 외국 여행 중에 구입을 해오기도 하는데 99.9%가 가짜이며 불법이므로 단호히 사지 말아야 한다. 사향에는 엘무스콘(L-muscone)이라는 성분이 일정 농도이상 함유되어 있어야 진품으로, 이 함량을 근거로 한국정부의 식약처에서는 엄격한 수입품 품질검사와 보증을 한다. 당연히 공진단은 정확한 용량의 엘무스콘이 함유된 사향으로 만들어져야 효능이 보장되며, 만약 검증되지 않은 사향이 들어간 것이라면 가격과 무관하게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최근 과학적인 방법으로 공진단의 효능을 설명하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한 연구진은 실험동물의 뇌에 혈액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뇌허혈 모델에서 공진단의 투여가 뇌세포를 보고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필자의 연구진은 스트레스성 피로와 기억력 저하를 개선하는 공진단의 효과에 주목하였는데, 지속적인 강제수영으로 스트레스를 유도하는 동물모델과 기억을 없애는 약물을 주사한 동물모델에서 공진단의 우수한 효과가 밝혀졌다. 특히, 해마(Hippocampus)라고 하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조직의 퇴행성 변화를 공진단은 현저히 개선하였고, 이는 BDNF와 NGF라고 하는 뇌신경영양물질의 생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임상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었는데, 수면을 제한하는 임상시험에서 공진단을 투여한 그룹은 대조군에 비하여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졸의 상승과 피로감을 현저히 억제하는 사실이 유수의 국제약학회지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042-470-9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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