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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반찬이 약이었던 시절의 얘기
고기반찬이 약이었던 시절의 얘기
  • 오정균
  • 승인 2018.06.27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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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

세무법인 이정 대표 오정균.

나이 들어가면서 건강을 염려해서인지 가급적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추세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모임들이 고깃집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고기를 먹게 된다. 고기를 먹을 때 마다 예외 없이 과식을 한다. 언제 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이 맛난 고기를 건강 때문에 피하고 있음이 배부른 행세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1년에 서너 번 고기 맛을 볼까 말까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건강을 이유로 그 귀한 고기를 피하고 있으니 배부른 행세가 아니면 뭐겠는가. 이 맛난 고기를 먹을 때면 오래 전 어릴 적 일이 생각나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내가 생전 처음 고기 맛을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9살 되던 해다. 그 전에는 고기라면 모두가 할아버님 약으로만 알았다. 육류, 생선을 막론하고, 비린 반찬은 모두 할아버님 약으로 알고 지냈다. 하기는 할아버님 진지상에도 고기반찬이 올라오는 경우래야 큰집에서 제사모신 뒷날, 시집 간 고모님이 친정에 오실 때, 아주 드물게는 동네에서 추렴하여 돼지를 잡는 때에 불과하여, 이런 저런 경우를 다 합해도 1년에 열 두어 차례나 되었을까? 그 외에는 봄부터 가을 사이, 물이 차갑지 않은 절기에 둠벙이나 무논의 고랑에서 송사리나 미꾸리를 잡아 집에 가져오면 자박자박 조려서 할아버님 상에 올려 드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물고기조차도 할아버님 약으로만 여기고 아예 먹어 볼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그런 판에 혹시나 큰 집 제사 뒤에 나뉘어 온 조기라든지 고기산적은 언감생심 맛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할아버님 약이었다. 그러니 그런 고기나 생선의 맛은 으레 쓰디 쓸 것으로만 여겨져 먹어보라 해도 도망 다닐 판이었다. 모양이야 어떻든 할아버님의 약으로만 알았던지라, 그 당시 온갖 병에 만병통치약처럼 처방되어 먹던 금계랍의 쓴맛을 연상하고, 그 맛일 것으로 짐작만 해 볼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초등학교 2학년 봄방학 때 고기 맛을 보게 된 계기가 생겼다. 그 해 봄방학 중에 마침 외할머니 생신이 닿아 외갓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별스럽게도 6학년이었던 막내 삼촌도 함께 가게 되었다. 할머님이 무남독녀 외딸이셨는데 외증조모님을 우리 집에서 모시고 있었던 터라 삼촌들은 생전 외갓집이라는 데를 가보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런 동생들이 딱해 보였던지 아버님께서 막내 삼촌을 우리 외갓집에 같이 가자하신 것이다.

그 시절은 집안 어른 생신 때면 동네 노인들을 다 불러 아침을 같이 하던 것이 일상이어서 그 날 아침에는 외갓집에도 손님들이 북적거렸던 기억이다. 그 북새통에 삼촌과 나는 외갓집 뒤꼍, 감나무 밑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생신을 맞은 외할머니께서도 그 곳에서 삶은 닭고기의 살을 발라내고 계시던 참이었다. 시골에서야 어른 생신치레라는 것이 그저 집에서 키우던 닭 두어 마리를 잡아 삶아 내고, 그 물에 미역국을 끓여서, 삶은 닭의 살을 발라 미역국 고명으로 얹어 내는 것이 그나마 특별한 음식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그 날 생신치레의 당사자이심에도 부엌일을 거들려고 그러셨던 것인지 외할머니께서 직접 닭고기 살을 발라내고 계셨다.

일을 하시던 외할머니께서 삼촌과 놀고 있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무슨 생각이 드셨던지 닭다리를 내밀며 한 번 먹어보라고 손짓을 하셨다. 그러나 고기라면 무조건 쓴 약으로만 알고 있던 내가 그 고기를 받아먹을 리 만무였다. 그 때 외할머니께서 지으시던 그 표정,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도리질을 하고 있는 나를 마냥 안쓰럽고, 불쌍하고,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그 연민어린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계속 권하시다가 내가 냉큼 받아먹지 않는 채 도리질만 해대니 이번에는 옆에 있던 삼촌에게 권하셨다. ‘먼저 사돈도령이 한 번 잡숴보라’며 자꾸 권하셨다. 그 때 삼촌은 나와 생각이 달랐던지 일단 거절을 하면서도 닭고기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 채, 내게 먼저 한 번 먹어보라고 끈덕지게 채근질을 해댔다.

닭고기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삼촌의 강권 때문에, 말을 듣지 않으면 놀아주지 않을 염려 때문에, 망설이다가 온 얼굴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닭고기를 받아먹었다. 그 때, 처음 고기를 받아먹던 그 순간의 느낌은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또렷이 기억될 정도로 생생하다. 외할머니께서 입에다 넣어주신 닭고기의 맛, 생전 처음으로 맛본 그 맛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맛이었다. 우선은 굵은 소금이 으적거리며 씹혀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뱉을까하다가, 이내 소금의 짭짜름한 맛에 섞여 포슬포슬한 고기가 씹히는데 약간 비린 것 같으면서도 생전 처음 맛보는 고소한 맛에 뱉지 않고 씹어댔다. 그러자니 느끼하지만 아주 맛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막힌 그런 맛이 입에 감도는 것이었다.

그 때, 우선 떠오른 생각은 ‘이건 약이 아닌데? 하나도 안 쓴데?’라는 의구심이었다. 처음 입에 넣은 고기 한 점을 미처 삼키기도 전에 ‘삼촌, 이거 약 아니야. 이거 쓰지도 않아. 엄청 맛있어.’라며 삼촌에게 그 느낌을 그대로 소리쳐 알렸다.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삼촌은 이 소리를 듣고서야 조심스럽게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 때까지 요란스럽게 떠드는 나와 조심스럽게 고기를 먹어보는 삼촌을 번갈아 살피시던 외할머니께서 뼈를 발라 놓았던 닭고기살을 대접에 푸짐하게 담아 소금 한 종지와 함께 내미셨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둘러 고기를 소금에 찍어 우겨 넣듯 잔뜩 입에 물고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고기 맛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고기를 먹어 배가 불러지자 언뜻 떠오른 생각은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하면 큰 일 난다고 얘기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님께서 이렇게 맛난 고기를 그렇게 쓴 약이라고 거짓말을 하시며 속여 왔다는 데에 대한 당혹스런 배신감이었다. 어린 생각에 맛있는 것을 할아버님 혼자 다 드시려고 우리들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는 생각만 들었다.

외할머님 생일잔치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참다못해 볼 멘 소리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닭고기를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더라고, 약이라더니 쓰지도 않고 맛있기만 하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때 아버님이 지으시던 그 곤혹스러운 표정, 오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올라,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민망스럽기만 하다. 어린 아들의 철없는 질문에 답변이 궁해 멈칫거리시던 아버님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그 때 아버님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할아버님 약이 맞다. 할아버지가 늘 편찮으시잖냐. 기운이 없으실 때는 고기가 약이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석연치는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이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우리에게 고기 차례가 오는 법은 없었다.

그 해 겨울이었던가? 반찬 없는 밥상머리에 앉아 반찬투정을 하다가 혼이 나는 바람에 울음을 쏟아 내면서 마구 생떼를 썼다. ‘왜 할아버지만 고기를 잡숫느냐고, 저 고기가 약이 아니더라고, 나도 먹어보았다고, 쓰지 않고 맛있기만 하더라고, 어른들이 거짓말만 했더라고.....’ 악다구니를 써대며 목청을 돋우어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어댔다. 평소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기만 하던 내가 암팡스럽게 떠들어대며 울어대니 당황해지신 아버님께서 나를 번쩍 들고 문밖으로 나오시더니 머리를 쥐어박으셨다. 평소 같으면 그러는 아버님이 무서워서 얼른 울음을 그치고 사태를 마무리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날은 이런 저런 일들이 서럽고 억울한 생각이 커서였는지 더 떼를 쓰며 울었던 기억이다.

이윽고 할아버지께서 기척을 내시며 부르셨다. 아버님은 민망해 하시면서, 나는 훌쩍이면서 방으로 들어섰다. 우리를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이제부터는 애들에게도 고기를 먹여라. 그 동안 나 혼자 먹자니 나도 민망했다. 애들 버릇은 어느 정도 길들인 것 같으니 고기반찬이 있으면 나누어 먹이도록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일 이후로 혹시 고기가 상에 오르면 한 두 젓가락 맛볼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런 경우래야 1년에 서너 번 있을까, 말까였다. 집안 형편이 좀 나아지고, 고기도 흔해져서 고기를 마음껏 먹게 되었을 때는 할아버님 세상 떠나신지 오래된 때였고, 아버님은 채식만 하셔서 고기를 드시지 않을 때였다.

아버님 노년에 몸이 쇠약해지셔서 고기 드시길 권하면 ‘어머니는 평생 고기 한 점 안 드셨어도 그 연세까지 정정하게 사셨다.’고 할머님 말씀을 하시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고기를 마다하셨다. 고기를 먹다가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고기가 과연 건강에 해가 되는지 득이 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그냥 헷갈려하며 맛으로 먹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고기를 먹고 나면 몸이 가려워지는 것 같기도 해서 과연 고기를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풍족해지다보니 별별 좋다는 음식, 식품들이 지천이다. 이런 판에 고기가 약이었던 시절 얘기는 먼 옛날 얘기에 불과할 뿐이고, 고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마저 풍미하는 세상이 되었다. 고기를 맛나게 먹으면서도 세월 따라 많은 것들이 모르는 새 훌쩍 변해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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