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단상]

   멕시코전 1-3역전패 관전 악몽 아직도 생생
   러시아 월드컵에선 그때의 분패 설욕했으면
    선수들 투지에 기대, 이변은 일어날 수 있다 

권오덕(전 대전일보 주필)
권오덕(前대전일보 주필)

러시아 월드컵 축구열기가 한창이다. 예선을 거친 세계 축구강호 32개국이 8개조로 나뉘어 불을 뿜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9회 연속 출전한 한국은 아쉽게도 첫판을 스웨덴에 1대0으로 내준 채 23일 멕시코와의 예선 2차전을 맞고 있다. 공수에서는 멕시코에 뒤지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승패를 예단할 수 없어서다. 최근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운이 잘 따라주는 문재인대통령이 관전한다니 더욱 그러하다.

문대통령은 붉은 악마와 함께 붉은색 응원복을 입고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응원한다고 한다. 후회 없는 일전을 부탁한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8년 6월 프랑스 월드컵을 현지에서 관전했다. 당시 나는 2002한일월드컵준비위원으로 운 좋게 프랑스월드컵을 볼 기회가 있었다. 딱 한 경기 리옹에서의 멕시코전이었다. 파리에서 테제베고속열차를 2시간 30분 타고 남쪽의 리옹에 도착했다. 시작은 좋았다. 전반 28분 골게터 하석주가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1대0으로 앞서자 스탠드의 300여 한국응원단은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불과 2분 뒤 하석주가 백태클로 퇴장을 당하면서 10명이 싸우자 게임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후반 들어 멕시코에 연속 3골을 허용하며 결국 1-3으로 패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그 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한 뒤 차범근 감독이 경질됐다. 한국 월드컵 출전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벨기에와의 예선 마지막 게임에서 1대1로 비겨 1무2패로 결국 예선 탈락했다.

그런데 2차전에서 우리에게 0-5의 굴욕을 안겨준 네덜란드 감독이 히딩크이고, 그가 다음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감독을 맡아 초유의 4강에 올려놓았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는 지금도 리옹의 분패를 잊을 수 없다. 첫 골을 넣었을 때 우리 응원단 300여명은 꽹과리를 치며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순간 나는 걱정이 앞섰다. 맞은편 멕시코응원단의 광적인 응원을 보며 이들이 게임이 끝난 후 우리 응원단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대부분 챙이 긴 전통의 솜브레로(밀짚모자)를 쓰고 북과 꽹과리를 두들겨대며 험악하게 응원했다. 피부 빛이 검고 체격이 건장했다. 만일 우리가 이겼으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만 명은 족히 될 듯한 그들이 폭력을 행사할 것 같았다. 다행히(?) 한국이 지는 바람에 이는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게임에 진후 허탈해진 우리 일행은 서둘러 빠져 나와 이곳 교민이 마련한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뼈아픈 패배의 아쉬움을 달랬다. 멕시코 팬들은 리옹이 마치 자기 고장인 듯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멕시코와의 일전을 맞고 보니 20년 전의 프랑스월드컵이 생각난다. 선수단이 모든 걸 쏟아 부어 후회 없는 일전이 되길 바란다. 지난해 동아시안 컵에서 우리에게 4대1로 대패한 일본이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2대1로 꺾은 것을 보라. 일본은 브라질월드컵에서 1-4로 패한 것을 멋지게 되갚았다. 일본이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유럽 팀보다 남미 팀과 할 때 더 잘 싸우지 않는가? 중남미선수가 유럽선수보다 체격이 작기 때문이다. 

월드컵축구는 항상 이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같은 조의 지난 대회우승팀 강호 독일이 멕시코에 패하고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스위스에 0대1로 패했다. 또 하나의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는 인구 수십만의 소국 아이슬랜드와 1-1로 비기더니 급기야 크로아티아에 0-3으로 대패해 팬들에 충격을 줬다. 우리도 이변을 연출할 수 있다. 문제는 멕시코 3만 응원단의 과열된 응원에 기죽지 않는 일과 선수들의 투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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