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깡마른 사내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흉측하게 생긴 그와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변을 애써 둘러보았다. 그 때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나왔다. 그는 자리가 있다며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몸이 약간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럴 때마다 아랫배에 힘을 주며 이를 굳게 다물었다.

깡마른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바닥에는 핏빛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희미한 조명을 받은 벽에는 아가씨들의 사진이 즐비하게 붙어 있었다.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반라의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동양계 아가씨들의 구릿빛 나신들도 간간이 눈에 뜨였다. 꼼꼼히 동양계 아가씨들의 사진을 훔쳐봤다. 그러다 채린과 비슷한 모습의 아가씨를 보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지가 그녀와 흡사해서였다. 사실 나는 순간적으로 채린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착각에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채린이 아니었다. 내 눈이 그곳 분위기에 적응했을 무렵에 본 그녀는 아내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던 사진을 유심히 훑어보자 앞서 가던 사내는 내게 검지를 하나 들어 보였다. 그녀와 같이 잠자는데 미화 일백 달러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벽에 붙어있는 사진 속의 아가씨가 가슴이 풍만하며 몸매가 날씬하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내가 그녀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 했던 모양인지 혼자 중얼 거리며 히죽거렸다.

나는 건장한 사내들이 지켜보는 사이를 뚫고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골든 드레곤 안으로 들어갔다. 주점 안은 예상만큼이나 침침했다. 중간에 홀을 두고 주변으로 사각지게 탁자가 놓여 있었다. 두터운 유리가 깔린 홀 바닥에는 싸늘한 형광등 불빛이 유리를 뚫고 치솟았다. 잘 닳은 쇠기둥이 홀 가운데 서 있었고 주변은 어둠으로 장식됐다.

내가 사내의 뒤를 따라 더듬거리며 자리를 잡은 곳은 구석지면서도 쇼걸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사내가 내게 그 자리를 잡아 준 것은 나를 유혹시켜 돈을 뜯어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오랜만에 찾아든 한국인의 씀씀이를 골려 주머니를 털어보겠다는 얄팍한 상혼이 너무나도 빤히 들여다보였다. 하지만 나는 못이기는 척하며 그가 안내하는 자리에 않았다.

그제야 내 테이블에 촛불이 켜졌고 어둠이 씻겼다. 주변 테이블에는 예닐곱 쌍의 연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면서도 쇼걸들의 관능적인 몸짓을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에 빛나는 눈빛들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나는 우선 작은 병에 든 보드카 한 병과 사과, 샐러드 약간, 그리고 오이를 시켰다. 내가 자리를 제대로 잡고 보드카를 한 잔 들이켰을 때쯤 잔잔한 음악이 춤곡으로 바뀌며 러시아계 무희가 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윤기가 흐르는 우윳빛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오똑하게 솟은 콧날과 좁은 어깨, 잘록하게 들어 간 허리, 그러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은 걸음걸이가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가린 얇은 핑크빛 실크 천을 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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