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육동일 충남대 교수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육동일 충남대 교수.
육동일 충남대 교수.

한국의 보수당과 보수세력들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냉험한 심판을 받았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지만 실제로 나타난 선거 결과는 참담하다. 선거직전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읍소도 해보고 뒤늦은 반성과 사과도 했다. 그러나 보수당과 그 세력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특권과 반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지난 박근혜‧이명박 대통령들이 구속되고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도 지난 정권의 반칙과 특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 때문이다. 그동안 모든게 변했는데 보수당과 보수세력들만 변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보수가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치 못하니까 지방선거에 직접 나서서 끌어내린 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급격한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계속 외면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따끔한 매를 맞을지 모른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수가 그간 내려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비우지도 못한 기득권과 특권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새로 채워진다. 그리고 나야 보수가 가야 할 새 길이 열릴 것이다. 보수는 지금 망했지만, 그래도 솟아날 구멍과 역할은 분명히 있다. 보수가 살아나기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세가지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 지속가능한 성장과 복지를 위한 새 역할

경제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진보가 대체로 강조하는 경제민주화, 무상복지, 평등한 분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류가 가고싶은 유토피아다. 그러나 진보적 경제정책들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과 반드시 상충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간의 경제성적표는 아직 초라하다.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 일관성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의 단축 등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서민을 위한 정책들이 오히려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계층간 소득격차을 확대시키는 등 그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만큼 경제회복과 복지사회의 조화와 실현이 생각만큼 쉽지않기 때문이다. 무상복지 중심의 정부주도 경제정책에 주력한 베네주엘라와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최근 최악으로 치달아 자국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IMF 지원에 목을 메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그 국가들은 한 때 경제대국이었다. 시장경제의 메카니즘을 외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적대시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함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 선진국가인 북유럽 국가들도 단순하게 무상복지가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자유주의 시장경제 토대위에 쌓은 경제력을 복지로 연결하고 있다. 80년대 영국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 외에는 아직 새로운 대안이 없다. 복지 모델국가 스웨덴도 강한 기업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복지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 스웨덴 보수당의 역할이 크다. 이같이 경제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한 진영의 일방적인 정책의 선택만으로 해결되어지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상호 협력하에 정치적‧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보수당과 보수진영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길과 역할을 제시해야 한다. 

# 남북평화와 통일을 향한 새 역할

최근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한 남북평화와 통일을 향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동시에 남북간 화해와 통일에 대한 대한민국의 새 비전과 추진전략을 제시하고 보수의 역할을 정립하는 일이다.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비핵화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난 70년간 적대관계속에 전쟁발발 위기의 직전까지 치달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대화와 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는 크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에 너무 낮은 수준의 북미간 합의 내용의 보완과 한국안보 상황 약화에 대한 우리 안보 대비책 마련, 그리고 북한체제 지원에 대한 비용 부담의 문제 해결은 보수의 몫이다. 그 어렵고 중요한 역할은 보수가 맡아 관철해야 한다.

같은 분단 국가였던 독일도 1969년 동‧서독간 평화와 화해의 물꼬를 튼 주체는 1969년 사민당(진보당)의 브란트 총리다. 그 후 20년간 진보와 보수가 이념을 뛰어넘어 균형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통일정책을 협력적으로 끌고갔다. 그 결과 1990년 기민당(보수당) 콜 총리가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통독의 교훈은 우리 남북간 관계개선과 통일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진보와 보수간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상호 정책적 역할분담이라는 사실이다. 원치않지만, 만에 하나 북핵문제가 꼬여서 남북관계가 다시 대결구도로 돌아간다면 보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한 새 역할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이슈, 자질검증, 공약경쟁이 없는 소위 3무 선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고비용 저효율의 선거관행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한국의 민선자치는 23세의 성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는 여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로 인해 민선 7기하에 지방자치도 향후 제기될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즉 견제와 균형이라는 지방자치 본질이 실종되고,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작용이 심화되면 지방자치가 지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선거의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현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정권이 힘주어 지향하는 자치분권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권력이 집권여당 일색이기 때문에 권역별 광역행정의 장점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보수는 그동안 자치분권에 대해 적극적인 인식을 갖지 않았다. 기득권 중심의 중앙논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분권의 길은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지만 대한민국이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선진국일수록 국가와 지역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 국정운영의 민주성과 효율성의 실현을 위해서,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이 된 자치권의 보장을 위해서 헌법을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추세와 우리나라의 국가발전 단계, 그리고 국민의식수준으로 보아서 보수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치분권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도 협력하고 자치경찰제 도입에도 협조해야 한다. 지방재정의 획기적 확충과 지방이양일괄법도 통과시켜야 한다. 아울러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거점도시로 만든 세종시도 그 본연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행정수도로 만드는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고 지역이 원하는 것이다. 

# 버려야 새로 오고, 비워야 채워진다

영국의 보수당은 300년 이상 위기 때마다 이념과 기득권 대신 실용과 개혁을 내세우며 살아남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궤멸수준까지 참패한 대한민국의 보수는 지금 절박하다. 한동안 힘찬 날개짓을 잃어버린 보수는 이제 낡은 이념을 버리고 기득권을 비움으로서 실용과 개혁을 위한 새 길과 새 역할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진보 진영도 보수를 적폐세력으로만 보지말고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새 역할과 능력이 필요함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평화와 통일, 성장과 복지 그리고 자치와 균형을 향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높게 날 수 있도록 양진영이 서로 함께 협력해 나가길 국민들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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