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골든 드레곤

616

 

하바롭스크거리는 호텔에서 도심을 지나 다소 한갓진 곳에 있었다. 낡고 육중한 건물들이 도열한 거리는 이른 새벽 공기만큼이나 음산했다. 우거진 가로공원은 정리되지 않은 채 스산한 한기와 함께 거리의 숨통을 조였다. 짙푸른 색감이 거리 전체를 덧칠했고 숲 속에 도심이 묻혀 있다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따냐의 승용차가 비실대며 시동을 멈춘 곳은 낡은 아파트 옆이었다. 5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는 오랜 세월의 흔적과 아이들의 낙서에 잘 길들어 있었다. 베란다에 쳐진 난간 대는 녹슬었고, 창문마다 붙어선 유리창은 두터운 먼지에 뒤덮여 희미하게 속을 내보였다. 아파트와 숲이 옆으로 비껴선 한편에 골든 드레곤의 간판이 보였다. 아파트 옆구리를 트고 나붙은 간판은 보호색을 잃은 카멜레온같이 멍청하게 주변을 응시했다.

눈을 거슬리게 한 것은 간판뿐만이 아니었다. 붉은 기둥사이에 황금용이 초리를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중화사상에 젖어 사는 중국인들다운 발상이 건물전체에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따냐 잠시만 기다리세요. 속을 엿보고 올 테니까.”

조심하세요…….”

따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주점을 향해 다가갔다. 손에 땀을 쥐며 긴장감을 느꼈다. 납치될지도 모른다는 홍등가 아가씨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놈들이 이른 새벽까지 주점을 지키고 있을까?’

주점 주변은 간밤의 광란으로 어지럽게 더럽혀져 있었다. 담배꽁초와 구토의 흔적, 과자를 쌌던 비닐봉지 등이 널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점 입구로 다가갔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우둔하리만큼 두터운 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지만 굳게 닫힌 문은 완강하게 버티며 나를 비웃었다. 크게 두드려 봤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쿵쿵거리는 소리만이 지하실 벽에 부딪힌 뒤 되돌아왔다. 나는 주점으로 들어가는 문이 또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다른 문은 없었다. 비상구로 보이는 아파트 뒷문도 굳게 잠겨있었다. 엉거주춤한 아파트만이 낯선 이방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 아파트 창문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창문 너머로 인형 같은 노랑머리 어린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아이는 내 눈 빛과 마주치자 해맑게 웃어 보였다.

순간, 한국에 두고 온 아들의 모습이 불현듯 스쳐갔다. 나는 사실 이곳에 온 뒤 아들의 생각을 거의하지 못했다. 채린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찼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내가 잠시 출장을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집을 막나올 때도 그 녀석은 좋은 장난감을 사가지고 올 것이라는 말에 작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빠 무슨 장난감 사올 거야?”

그래 아빠가 출장 다녀올 때 좋은 장난감 사올께 이모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아빠가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눈시울이 축축이 젖어왔다.

새벽의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채린을 찾아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