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골목집에서 나를 엿봤거나, 아니면 노파의 고자질을 듣고 나를 털려고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춘부들에게 뒷돈 집어 주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내가 호사스런 사업가이거나, 혹은 이곳 실정을 전혀 모른 채 홍등가를 찾은 관광객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정작 내게서 별다른 소득이 없자 그들은 몹시 불쾌해 하는 기색이었다.

칼을 들이댄 사내가 내 코앞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나를 빤히 내려다 봤다. 큰 눈알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짙게 뻗은 콧수염과 콧등에 붙어있는 사마귀가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진 것을 몽땅 털어 놔. 말기를 못 알아듣겠어 썅?”

그는 더욱 위협적인 말투로 다가서며, 칼끝으로 내 목을 지그시 눌렀다. 금방이라도 예리한 칼날이 목주위의 혈관을 잘라버릴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가진 것이 없어. 이게 전부야.”

옷이라도 벗어야지 이 새끼야.”

나는 급히 잠바와 티셔츠를 벗었다. 그의 낌새가 심상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바지도 벗어. 죽기 전에.”

나는 한기를 느끼며 혁대를 풀어 헤쳤다. 식은땀이 등짝을 타고 지르르 흘러 내렸다. 내가 바지를 거의 벗었을 때 쯤 다른 사내가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나는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그는 내가 숨을 들이킬 겨를도 없이 등짝을 구둣발로 짓이겼다.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참기 어려운 통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칼을 목에 들이대고 있던 사내가 뾰족한 구둣발로 내 앞가슴을 걷어찼다.

나는 질퍽한 골목길에 꼬꾸라진 채 통증을 이기려고 몸부림 쳤다. 숨을 허덕거렸다. 그들의 거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 벌렁 누워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퍼덕거렸다. 그들의 눈앞에 널브러져 허둥거리는 내 모습이 몹시도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누워 있었다.

손끝에 진흙이 만져지는 것을 느꼈을 때 이미 그들은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등이 싸늘하게 식어 왔고 으스레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냉소적인 세상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거들떠보는 이도 없는 낯선 거리, 낯선 하늘, 그 한 가운데 그렇게 늘어져 있었다.

두 팔을 늘어뜨리고 반듯하게 누워 왜 이런 고통을 격어야 하는지 되물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게 다가섰다. 이를 악물었다. 채린의 얼굴이 저만치 하늘 그림자 속에 별 빛과 함께 떠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미끄러져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막연하게 내게서 많은 시간이 지나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굵은 쐐기가 박힌 듯 아팠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진흙에 더렵혀진 주소록과 호텔 열쇠 그리고 텅 빈 지갑을 주어들고 비틀거리며 골목을 벗어났다.

그 때까지 따냐는 기도하는 수녀처럼 차 속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차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이내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연신 하바롭스크거리, 골든 드레곤을 반추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