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46]
탈북자[46]
  • 이광희
  • 승인 2018.06.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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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순식간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나와 눈빛을 마주대하는 것조차 귀찮은 기색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얇은 겉옷을 벗어젖히고 알몸으로 바퀴벌레처럼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값싼 눈빛으로 나를 유혹했다.

나는 문득 그녀의 행동에 헛구역질을 느끼며 속으로 골든 드레곤하바롭스크거리를 되새김질했다.

고마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불결한 공간, 어두운 조명, 머리가 지끈거리는 비릿한 냄새, 이 모든 것이 몸에 흠뻑 배인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나는 가쁘게 호흡을 토했다. 폐 속에 고스란히 고여 있던 눅눅한 냄새를 토해내기 위해서였다.

골목에는 여전히 어둠이 뻑뻑하게 고여 있었다. 스산한 밤바람이 기분 나쁘게 불어왔다. 아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구하지는 못한 것이 안타까웠지만 이곳에 없는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있을지도 모를 골든 드레곤이란 주점을 알아냈음에도 신이 나지 않았다. 도리어 채린이 매춘부의 모습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만약 아내가 매춘부의 모습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였다. 내가 막 골목 중간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가 불쑥 나타나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순간 나는 헛것을 본 사람처럼 기겁을 하고 놀랐다. 호흡이 일순간에 목젖에 달라붙었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동상처럼 굳어 버린 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물체는 낯선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씩씩거리며 내게 성큼 다가와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키는 나보다 족히 두 뼘은 더 커보였고 몸집은 두 배는 됐다. 무식하게 생긴 모습이 어둠속에 다가섰다. 하지만 어둠이 두텁게 쌓인 탓에 그들의 얼굴을 알아 볼 수는 없었다.

더욱이 내가 그들을 보고 정신을 잃을 만큼 크게 놀란 것은 그들 중 한 사내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미한 달빛 속에서 섬뜩 빛나는 칼은 족히 30센티미터는 더 될 것 같았다. 달빛을 받아 번득이는 칼날의 스산함이 싸늘하게 내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갑자기 몸이 내 의지와 달리 부르르 떨렸다. 칼날이 내 몸을 냉정하게 파고든다면 몸을 관통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순간 칼을 든 사내가 내 앞에 다가서며 칼날을 목에 들이댔다. 싸늘한 날카로움이 예민하게 느껴져 소름이 오싹 끼쳤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몸 전체로 번져갔다. 그 공포는 단지 피상적으로 몰려온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번져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사지가 후들거렸다

가지고 있는 것 모두 다 내놔. 좋은 말로 할 때.”

그의 말소리는 나직이 깔렸지만 짧고도 위협적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을 뒤져 그 자에게 내밀었다. 돈 몇 푼과 호텔 열쇠,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주소록, 손수건 …….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내가 내 뒷주머니와 속주머니 심지어 구두 속까지 치사할 만큼 세밀하게 뒤졌다. 그래도 약간의 돈 외에 값나갈 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자 질척한 흙바닥에 세운 뒤 내 구두를 어둠속으로 힘껏 차버렸다.

그리고는 내 발 옆에 침을 퉤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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