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헌의 시와 그림]

쫄면

누구 성격처럼 칼칼,

누구 입술처럼 달콤,

누구 미소처럼 새콤,

누구 머리칼처럼 미끈,

누구 고집처럼 질긴,

누구 과거처럼 엮인

누구 영혼처럼 꼬시는,

누구 사랑처럼 불어나는,

쫄아들면 안 되는,

물쫄면은 되는.

“쫄지 말고 살아라”

Cuba에서 만난 Hemingway: Mundos 호텔 511호와 Florita

가능성이 높은 서울-토론토-하바나行을 선택했다. 그런데 세상살이 어디 쉬운 게 없듯 환승지 토론토 도착 후 브릿지가 연결되지 않아 하바나행 비행기를 놓치고 에어 캐나다에서 제공하는 토론토 1박이 강제적 덤(긍정으로 생각)으로 추가된 우리가족 넷의 자유여행이었다. 비록 경비는 추가되었지만 토론토 시내와 온타리오 미술관(AGO)를 구경할 수 있었으니 예상할 수 없는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Cuba도 정체성을 빼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섬일 뿐이고 생각보단 세련된 겉보기의 사람들과 Cuba만의 색과 멋을 간직한 스페인의 속국(1492년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이지만 도미니카와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 스페인 왕들의 어깨에 떠 있는 콜럼버스의 눈에 들어와 식민지가 된) 그러다가 바로 위 미국이 51번째 주(State)로 탐내 무비자로 헬기타고 다니던 ‘대부2’의 놀음판이었지만 지금은 K-pop과 ‘응8’에 익숙하며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나라다. 한국에 와서도 알았던 현지인과 ‘카톡’이 되는 온라인, 실시간 한세상이다.

민박집 Casa(집)도 생각보다 고급지고 1950년대의 미제 Old car가 아직도 형형색색으로 하바나 도시를 질주하는, 뜨거운 태양의 Cuba는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의 나라다.

헤밍웨이가 유명 소설가로 이곳에 살았다는 것만으로, 모든 남미인들의 프렌드! 아르헨티나 출신 의사 체(Che)가 혁명을 이루고 쿨하게 ‘조국 아니면 죽음’이라면서 볼리비아로 떠나 롤렉스 서브머린(Submarine) 을 차고 땅콩죽을 마지막으로 식사한 후 죽었지만, 둘 다 Cuba 사람이 아닌데 Cuba 시가(Cohiba)처럼 돈벌이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가 씰룩 실소를 만든다.

아직도 거리마다 주먹이 미국 국기를 향하고 있는 선명한 그림들 속 Che는 분명 ‘REVOLUTION’의 베레(Beret)모 영웅이다. 무상 의료지만 빠른 진료는 뒷돈(빽)이 오고가고, 무상 교육이지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정도로 질이 낮다는 혁명의 결과는 오래지 않아 재평가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관광 수입원으로 외국인(캐리비안 해변에는 러시아와 캐나다인들이 많았다.)은 받아들이지만 내국인의 출국은 철저히 제한하는(그러나 배로 남미에 가서 돈을 버는) 통제의 나라에서도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나도 모르는 연기자 ’이민호’를 안다며 사진 찍자는 나라다.

하바나를 조금만 벗어나도 마차와 차가 섞여 달리는, 마트의 썰렁한 품목들이 북한을 연상시키는 Cuba는 순수일지 모르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혁명의 결과인가?

그래서 그런지 트리디나디에서 생전 처음 마신 모히토(Mojito)가 자꾸만 땡긴다. 폭탄주처럼. 더 찐하게 타라고...

스페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인 메스티조(Mestizo, Mulatto-백인과 흑인의 혼혈, 51%), 스페인(37%), 흑인(11%) 그리고 애니껭이라 불리는 한국인 사탕수수밭 노동자 후손들이 살고 있는 쿠바에 헤밍웨이가 온 이유는 여자나 낚시가 아니라 자유와 열정 아니었을까?

*1905년 1,033명의 노동자들이 돈 많이 준다는 일제의 광고에 속아 제물포에서 영국배의 화물칸에 타 40일 만에 멕시코에 도착 에네켄(Henequen, 애니껭, 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착취, 값 하락으로 사탕수수 농장의 쿠바로 1921년 300명이 이주, 사탕수수 값의 하락 등으로 정착하여 현재 쿠바인으로 동화되어 700여명이 살고 있다.

헤밍웨이는 낚시를 위해 1932년 쿠바에 첫발을 디딘 이후 1939년부터 정착한다. 그는 Habana의 찌는 더위에 낮이면 Cafe Florita에서 더블 다이키리를 노란 간판의 라 보데기다 델 메디오(La Bodeguida del medio)에서 모히토로 한 잔 목을 축이고 시원한 밤에 CORONA 타이프로 작업, 그것도 서서 했던 그였다.

Cafe ‘Florita’는 Cuba 전체가 사탕수수 밭이란 해도 과언이 아닌 사탕수수로 만든 Rum酒에 설탕과 민트를 넣어 만든 칵테일 모히토(Mojito), 민트 대신에 콜라를 넣은 Cuba libre, 콜라 대신에 레몬을 넣은 다이키리(Daiquiri) 한 잔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급한 볼일 보러 무작정 들어갔는데 한잔하고 기분 좋은 그가 바에 있었다.

그리고 Old Habana의 전망 좋은 Mundos 호텔 511호에 살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완성(1940년)하였다.

게장

잡힌 몇 놈을 화장시키기로 했다.

붉게 변했다. 피를 토하고 죽은 것이다.

무서웠다.

그냥 담 밑에 두었다.

첫 장례식장은 이렇게 끝났다.

그동안 세월만큼 변질된 나.

그걸 증명하는 낙지는 알러지로 늘 응급실행인데

다행히 게는 아직까지 이상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내 피가 먼저 뿌려진 덕이다.

붉은 색, 흐르듯 붉은 색 휘장이 흩날릴 때도 너라고는 믿지 않는다.

만나게 될 사후는 같은 편이지만 세상의 공포증이 공허해질 즈음 모든 것들은 굳어질 것.

흘러가는 이상한 반응이다. 무서웠다.

“두려워하며 살아라”

바닥- 안식처

뒤집어 생각해보니

너희들 없인 안 될 것들

걱정투성이인 세상

차곡차곡 대기하였던

땡큐들

욱하고 뒤엎어지면 어쩌누

그러기에 건방지지 말기.

봄버들

버들 류(柳)씨들의 세거지 대청댐 방아실 입구에

첫, 새봄이 하늘거리며 파노라마로 퍼지자

젊었을 땐 취해서 타령을 하던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이

과거엔 새색시 꽃가마 길에 늘어진 수양버들이

피리 불던 시냇가의 갯버들이

그리고 남간정사 입구엔 선비의 왕버들이

우리나라에만 사는 키버들이

그리고 할머니의 도깨비불 이야기도 무섭게 재생되고

달빛에 버들가지가 또 꿈처럼 흔들리고

저 부드러움도 여름이면 가는 그늘을 만들 것이고

나는 바람처럼 무심히 지나가다가

딱딱한 착한 마음이 살아났으면 좋겠고

세상만사 걱정들이 살랑살랑 다 흩어지길 바라고...


송선헌 원장.

치과의사, 의학박사, 시인,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대표 원장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UCLA 치과대학 교정과 Research associate
 
대한치과 교정학회 인정의
 
전)대전광역시 체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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