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과 6∙13 지방선거
신언서판(身言書判)과 6∙13 지방선거
  • 나창호
  • 승인 2018.06.0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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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전 충남 부여 부군수(수필가).
나창호 전 충남 부여 부군수(수필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중국 당나라 때 관리등용시험의 4가지 평가기준이다. 

첫째 신(身)은 사람의 용모를 말한다. 풍채가 훤하고 늠름해야지 볼품이 없으면 재주가 뛰어나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관리라면 풍채와 인상이 좋아야 함을 중시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사람은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래서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고, 호감이 별로인 이가 있지 않은가. 

둘째는 말솜씨, 즉 언변이 좋아야 했다. 말은 조리가 있고 알아듣기가 쉬워야 한다. 아무리 뜻이 웅대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횡설수설하거나 말하는 의도가 불분명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말 속에서 그 사람의 유식함과 무식함, 유능함과 무능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셋째는 필적, 즉 글씨를 잘 써야 했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성품이 묻어난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 글씨도 잘 쓰고 문서작성에도 능하다고 봤던 것이다. 들쭉날쭉하거나 삐뚤게 쓴 글씨보다 가지런하고 보기 좋게 쓴 글씨가 인정을 받았다. 지금도 옛 사람들이 잘 써놓은 글씨를 보면 참 보기가 좋다. 엊그제 출렁다리로 유명한 강원도 원주의 소금산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들렀었다. 하필 영릉구역이 정비공사 중이라서 영릉은 참배를 하지 못하고 세종대왕문화관만을 관람했는데, 전시해 놓은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등의 글씨를 보고 ‘참 잘도 썼구나.’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시험에서 왜 필적을 중요시 했는지도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판(判),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었다. 아무리 풍채가 훌륭하고, 말에 논리와 설득력이 있어도, 또 글씨가 아주 명필이어도, 일을 당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관리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봤던 것이다. 공무를 추진함에 있어서나,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판단능력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도 지휘관이나, 현장 책임자 판단의 적정 여부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마저 오감을 알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태 때 배에 끝까지 남아 승선원 구조를 총지휘하고 최후에 탈출을 시도하거나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했어야할 선장이, 승객들에게는 ‘제자리에 앉아 있으라.’하고 자신만 먼저 탈출한 일이 과연 옳은 판단이었을까? 만약이지만 그 당시 선장이 고유권한을 발동해 갑판으로의 탈출을 명령하였거나, 노약자·부녀자 우선 탈출 조치 등 구조 대상별·시간별로 체계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지 않았을까? 선장은 공법상, 사법상의 직무와 권한을 가진 자로서 선내의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을 도모함은 물론 선상에서의 모든 지휘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책임자이기에 하는 말이다.

또 지난해 연말께의 제천화재 때는 2층 유리벽을 제때 깨지 않아, 구출이 가능했던 20명이 떼죽음을 했는데, 현장 지휘관의 판단은 과연 옳았던 것일까?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생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공직자로서의 판단력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가릴 줄 알아야 올바른 판단과 실행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일이 열흘도 남지 않은 것 같다. 거리에는 선거현수막들이 무수히 걸려 있고, 선거운동원들로 넘쳐나고 있다. 또 큰 사거리에서는 오가는 차량이나 사람들을 향해 무턱대고 절을 하는 무리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큰둥하니 선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시·도지사와 교육감, 광역시·도의원, 시장·군수·구청장과 시·군·구의원을 한꺼번에 선출하는 동시선거라서 후보자들이 많고, 누가 어떤 선거에 나왔는지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지역살림을 책임질 지역인재와 교육수장을 뽑는 대사이므로 더 큰 관심을 보여야 마땅하다. 

후보자들을 이모저모 살펴보고, 이들이 제시한 공약들을 서로 비교해 우열을 가려야 하며, 선거별로 신중하게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최선의 후보자가 없다면 차선의 후보자를 선택하고, 이마저도 없다면 최악의 후보자부터 배제해 나가는 방법으로 차악의 후보자라도 선택해야만 한다. 

선거는 국민이 국민의 대표자를, 지역주민이 지역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며, 어찌 보면 현대사회의 인재선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에 무관심함은 금물이며, 어떻게라도 선거에 참여해야 옳다. 정녕 후보자를 선택하기 어렵다면 당나라 때 인재등용기준인 신언서판을 참고해서라도 후보자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용모는 단정하고 깔끔한지, 지역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진솔한지, 말은 어수선하지 않고 논리 정연한지, 말속에 거짓꾸밈과 허풍은 섞여 있지 않은지 등을 면밀히 살펴만 봐도 찍을 만한 후보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판단력의 좋고 나쁨은 후보자 토론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선거가 무관심 속에 흐르고 투표율마저 떨어지면 민의가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기권은 금물이다. 지방자치의 꽃은 지역주민이 선거에 흔쾌히 참여할 때 피울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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